해마다 6월이면 나라를 지켰던 순국선열들의 헌신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데요. 오늘은 6.25전쟁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영화 <고지전>의 실제 소재가 되었던 백마고지 전투를 국군의 승리로 이끌었던 김종오 장군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 김종오 장군 / 출처 : 전쟁기념관 > 



1952년 휴전 회담이 한창이던 때, 김종오 장군은 국군 제9사단 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백마고지는 철원에서부터 서울로 손쉽게 진격할 수 있는 전사적 요충지이자 국군의 주요 보급로 중 하나였는데요. 때문에 이 지역은 중공군에게 절대 빼앗길 수 없는 국군의 중요한 전장지 중 하나였습니다. 


백마고지가 군사상 중요한 요충지였던 만큼 이 지역을 탈환하려는 중공군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이에 김종오 장군은 물러서지 않고 백마고지에 배수진을 치고 죽어서라도 백마고지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제9사단 장병들과 함께 중공군에 맞서게 됩니다. 국군과 중공군은 백마고지의 탈환을 두고 10일 동안 24번이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 백마고지 전쟁 현장 / 출처 : US ARMY >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백마고지 전투는 9일 동안 총 12번의 공방전, 아군과 적이 사용한 포탄 수 27만 발, 중공군 1만여 명, 국군 약 3천5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10월 15일 오전 국군의 승리로 마침내 종결되었습니다. 중공군을 완패시킨 백마고지 전투는 이후 휴전회담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뿐더러 김종오 장군이 한국군의 전설적인 명장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 직후 9사단을 방문한 유엔군 지휘부와 김종오 장군 / 출처 : 백마고지 전투 기념관 >



미군은 6.25전쟁에서 치른 전투 중 백마고지 전투를 가장 높게 평가해 이 전투에 대한 사후 검토 보고서를 작성해 전 미군 부대에 배포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중공군 역시 6.25전쟁을 기록한 글에서 백마고지 전장을 유일하게 국군에게 패배를 인정한 전투였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 김종오 장군의 유품 / 출처 : 백마고지전적지 기념관 >



6.25전쟁에서 공을 세우며 한국군의 전설의 명장으로 불린 김종오 장군. 그는 이후 군단장, 군사령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등의 요직을 거친 뒤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게 됩니다. 수많은 적군을 물리친 그였지만 병마와의 싸움에서는 끝내 이기지 못했는데요. 결국, 196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더 일할 나이에 조국 통일도 못 보고 눈을 감으니 한스럽고 죄송할 뿐이니, 

평생의 소원인 통일 성업을 꼭 이뤄 달라”

- 김종오 장군의 유언 중

 

죽는 그 순간까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한 김종오 장군. 6월의 마지막 주인 오늘만큼은 김종오 장군처럼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6.25 전쟁 호국영웅들의 넋을 기리는 하루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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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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