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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물건 이야기

70년대 부엌의 중심, 주부의 자부심이었던 풍로

곤로라고 하면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곤노? 골로? 공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차 모르는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럼 풍로는 어떤가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3전시실에 오시면 7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 취사기구인 풍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본 제품이 아닌 국내에서 만든 아씨 풍로라는 제품입니다. 부엌에서 고된 살림을 하는 주부를 높이듯 아씨라는 고운 명칭으로 상표를 달았네요. 여기서 풍로를 처음 보거나 곤로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도, 양은 냄비가 올려진 풍로를 보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단번에 알아보실 수 있겠지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풍로

 

부뚜막의 디자인을 바꾼 풍로의 등장

 

80년대 초까지 어느 집 부엌에서나 볼 수 있던 풍로는 일본식 발음인 곤로(konro[焜爐])’로 더 널리 불렸습니다. 유리심지를 아래쪽 기름통에 닿게 하여 불을 피우는 풍로는 중앙의 손잡이를 열고 기름이 묻어있는 심지에 성냥불을 붙이면 곧바로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를 위아래로 조절하여 화력도 조절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불편하고 위험해보이지만, 장작을 떼는 아궁이에서 밥을 하던 당시에는 참으로 획기적인 도구였습니다.

 

 

 

풍로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솥을 올리던 아궁이는 막고 그 자리에 풍로를 들였습니다. 주방도구도 크고 무거운 솥에서 풍로에 올릴만한 작은 솥이나 가벼운 냄비로 바꾸고, 부엌 한쪽에 쌓아두던 뗄감도 석유통으로 바꾸었습니다. ~~ 바람을 불어 힘들게 불을 지피지 않아도 되고, 불씨가 꺼져도 금세 다시 살릴 수 있었던 풍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시 풍로 한 대 가격이 5천원에서 8천원 사이. 쌀을 두 가마나 주어야 살 수 있는 고급품이었지만 편리한 사용성 덕분에 풍로는 빠른 속도로 각 가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살림의 정석이 된 풍로 사용법

 

70년대 일간지에 실린 풍로 광고

 

풍로를 사용하던 60~70년대에는 풍로사용법도 신문에 자주 실렸습니다. 내용을 보면, ‘쇠풍로는 바깥까지 뜨거워지니까 그 만큼 열손실이 크고 취급하기 불편하다. (중략) 풍로를 살 때는 양쪽 벽이 두껍고 들어보아 가벼운 것을 고른다.’(1960126일 동아일보 기사) 그만큼 생활에 가까운 물건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풍로는 장점에 비해 단점도 많았습니다. 높이가 낮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주부들의 허리와 무릎 관절에 무리를 주었고, 풍로에 사용되는 등유가 연탄보다 비싸서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컸습니다. 또 기름이 타면서 나는 그을음이나 냄새가 음식에 배어 풍미를 망치기도 해서 김을 굽거나 할 때는 여전히 연탄불을 썼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치명적인 단점은 화재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불을 붙이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화재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했습니다.

 

석유파동과 가스레인지의 등장으로 저물게 된 풍로의 시대

 

그럼에도 식지 않던 풍로의 인기는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급격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석유파동에 대비해 가스 연료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86년부터는 각 가정에 액화천연가스(LNG)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와 맞물려 사용이 간편한 가스레인지가 속속 풍로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린나이를 비롯해 가전회사들이 가스레인지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1987년에는 10가구 중 7가구가 풍로 대신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로써 화려했던 풍로의 시대도 저물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가스레인지 역시 인덕션, 전자레인지, 쿠커 등 다양한 취사기기들이 등장하며 주방을 독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보다 안전한 부엌, 빠른 조리를 원하는 주부들의 열망에 따라 부엌의 취사용구는 계속해서 다양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가열하는 조리도구 인덕션

 

풍로, 소품과 캠핑도구로 재등장

 

2014년 아직도 풍로를 사용하는 곳은 있습니다. 가스 보급이 불편한 시골이나 시골 장에서는 이동이 간편한 풍로를 난로 대용으로 피우기도 합니다. 또 실사용이 아닌 인테리어 용품으로 거래되는 중고 풍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캠핑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캠핑용 풍로가 캠핑 장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엌에서 사라진 풍로, 하지만 금세 강력한 화력을 전해주던 풍로의 인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