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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는 History/특별전 소개

[특집] 방송특별전 1. 소리의 시대, 현대적 일상의 시작

소리의 시대, 현대적 일상의 시작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라디오 방송의 역사

 

 

 

대한민국 1호 라디오 금성 A-501(1959),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전시실 전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722일부터 <소리(音), 영상(色), 세상을 바꾸다>라는 특별전이 열립니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방송학회와 공동으로 준비했는데요, 방송을 통한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특별전의 목적입니다. 특별전 <소리(音), 영상(色), 세상을 바꾸다>는  「소리의 시대, 현대적 일상의 시작 」 ,  「텔레비전과 '조국 근대화’」 ,  「컬러 방송과 민주화, 다양한 볼거리」 ,  「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 , 이렇게 총  네 가지 영역으로 꾸며졌습니다.

그 첫 번째   「소리의 시대, 현대적 일상의 시작」에서는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라디오 방송을 보실 수 있습니다. 라디오시대에 관한 이야기, 먼저 들어보실래요?

 

 

 

 ▲ (왼쪽부터) 1920년대 보급형 라디오 수신기(1927), 국내 최초의 광석 라디오(1927), 광복 이후 국내에 반입된 미군용 전파 수신기(1940년대), KBS소장

 


 

'일본이 만든' 경성방송으로 광복뉴스를 듣다

 

KBS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성방송국이 1927216일에 첫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시대였는데요, 하나의 채널에서 한국어와 일본어가 3:7 비율로 교차방송 되었죠. 이런 방식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불만을 샀습니다. 그래서 1933년부터는 두 개의 채널로 방송을 했는데, 1채널은 일본어 방송, 2채널은 한국어 방송으로 진행되었죠.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라디오방송을 철저히 총독부의 대변인 역할로 전락시켰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1941년 라디오 방송은 일본의 동경방송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황국식민화를 위한 내용만 되풀이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식민화 전략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라디오 방송이 1945815, 광복의 소식을 알려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내용을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되었죠. 글을 몰라 신문호외를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도 라디오를 통해 시대가 바뀌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아나운서, 라디오가 만들어낸 스타

 

해방 후 경성방송국은 미국의 상업방송국 모델을 따라 바뀌게 됩니다.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가 방송의 전부였던 당시에는 아나운서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대표적인 이들로는 차분하고 우아한 음색을 가진 이옥경, 마현경 아나운서가 있고, 스포츠 중계에서는 박충근 아나운서가 독보적이었습니다. 어린이 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똘똘이의 모험>, 퀴즈프로 <스무고개>, <천문만답>과 같은 프로가 인기였습니다.

 

1960년대 라디오 방송의 전성기

 

라디오는 사람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의견이 갈릴 때는 라디오에 나왔다는 말 한마디로 참말이 되었던 때죠. 6·25전쟁과 같이 큰일이 일어났을 때도 국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전시상황을 듣고 피난을 준비했습니다. 전쟁으로 기존에 운영되던 방송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어도 부산으로 피신한 방송국은 미군의 지원으로 다시 일어섰죠. 라디오 방송은 그렇게 계속되고 발전하였습니다.

 

1960년대는 민영 및 상업 라디오 방송국이 대거 만들어지면서 라디오 방송이 꽃을 피운 시절이었습니다. 기독교방송(1954)을 시작으로 1961년 문화방송(MBC), 1963년 동아방송(DBS), 1964년 동양방송(TBS, 개국 당시 RSB), 1965년 서울FM방송이 차례로 개국했죠. 방송사들의 경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1966년부터는 AMFM 겸용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음질이 좋은 FM 방송의 청취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때 유명한 프로그램으로는 <전설의 고향>의 모태인 <전설 따라 삼천리>가 있었고요, <아낌없이 주련다>, <빨간마후라>, <떠날 때는 말없이> 등의 라디오 연속극은 큰 인기를 끌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태권동자 마루치><손오공>에 폭 빠졌고, 공개방송인 <재치문답> 프로그램에는 재치박사로 불리는 남녀 손님들이 나와 퀴즈 경쟁을 벌였습니다. 


▲ TBC TV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 대본, 1956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라디오의 수난 시대

 

그러나 라디오 방송의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라디오 방송(뉴스)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197210월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는 유신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어야했고, 1980년에는 너무 많은 언론사의 수를 조정한다는, 이른바 언론 통폐합으로 민영방송시대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었습니다. 텔레비전 시대 도래는 라디오 방송에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대중의 관심과 열정이 텔레비전으로 옮겨갔습니다. 1973년 전국의 텔레비전 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설 정도로 텔레비전이 대세가 되어 라디오 방송의 영향력을 급속히 하락시켰습니다.

 

 

사랑은 라디오 음악과 함께

 

그러나 이렇게 무너질 수만은 없었죠. 라디오 방송은 텔레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정보와 음악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했는데요, 1970년대에는 DJ를 앞세운 음악 방송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윤형주, 이종환 등이 DJ로 활약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기억나시나요? 이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입에 녹음했답니다. 장수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도 빠뜨릴 수 없는데요, 19693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방송 되고 있습니다.

 

한편, 텔레비전 방송과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KBS 라디오는 6·25 특집 방송 <이산가족 찾아주기 운동>을 텔레비전 방송과 함께 진행했는데요, 1982년부터 1983년까지 136일 동안 454시간 연속 생방송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산가족찾기 신청카드, 1983년, KBS소장

                              이산가족찾기 신청카드에는 찾을 사람의 인적사항, 사연, 찾는 사람 등의 내용이 기입되어 있다. 사진을 붙여 알아보기 쉽고

                              눈에 잘 띄게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의 라디오

 

1990년에는 새 방송법이 통과되어 위성방송과 케이블방송도 개막을 했습니다. 이제 방송은 뉴미디어방송의 등장과 함께 다매체 다채널시대가 펼쳐진 거죠. 이런 새로운 환경 때문에 라디오 방송이 가장 먼저 쇠퇴할 거라는 우려도 많았는데요. 라디오 방송은 오히려 라디오만의 특성을 살리고 시간대별 청취자에게 맞는 전문 프로그램을 만들며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8·15광복, 6·25전쟁, 그리고 상업방송 시대를 거쳐 인공위성을 통한 방송까지 우리와 함께한 소리의 시대, 라디오 방송!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더 궁금하다구요?

그렇다면 722일부터 열리는 <소리(音), 영상(色), 세상을 바꾸다> 특별전을 보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