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체험하는 History/특별전 소개

[특집] 방송특별전 2. 텔레비전과 '조국의 근대화'

텔레비전과 '조국의 근대화'

 

소리(), 영상(), 세상을 바꾸다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지난주에는 소리의 시대, 현대적 일상의 시작이라는 글을 통해 라디오의 역사를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역동적인 영상의 시대를 연 흑백 텔레비전의 역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상자 속에 작은 사람이 들어있다?

 

처음 텔레비전이 우리와 함께 했을 때에는 지금과 같은 형형색색의 고화질 컬러텔레비전이 아니었습니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배불뚝이 흑백텔레비전이었지요. 그것도 국내에서 만들 수 없어 외국에서 수입한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온 것은 1954730. 미국 RCA사의 한국대리점에서 국내 텔레비전 보급에 대한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해 보신각 앞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은 가정에서 영상을 보는 시대를 맞이합니다.

 

이때는 한국에 텔레비전 방송국이 없을 때여서 비디오처럼 녹화된 영상을 폐쇄회로를 통해 방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년 뒤인 1956512, 최초의 텔레비전방송인 HLKZ-TV가 하루 2시간씩 방송을 시작했고, 1961년에 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 1TV 전신)1964년에 민영 동양방송(TBC-TV)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한국은 일본, 필리핀, 태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4번째로 텔레비전 방송국을 보유한 나라가 됩니다.

 

51 경쟁률을 뚫은 텔레비전

 

방송은 시작됐지만 문제는 전파를 수신할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비싼 미국이나 일본 제품을 수입해야만 했습니다. 금성사(LG전자)1963년 일본 히타치사와 기술도입계약을 맺으면서 1966년 마침내 국내에서도 흑백텔레비전을 생산할 수 있었는데요, 최초의 텔레비전인 'VD-191'는 당시 가격이 68,000원으로 쌀 27가마(쌀 한 가마니 2,500)에 해당하는 고가 상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개월 할부 판매의 경쟁률이 5:1에 이를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가였지만 이 텔레비전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추첨을 통해서만 살 수 있었으니 요즘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밤새 기다리는 것보다 치열한 경쟁률이었던 셈이지요.

 

 대한민국 1호 흑백텔레비전 금성VD-191, 1966(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시청 광장이 된 우리 집

 

27 가마니나 되는 비싼 흑백텔레비전은 주로 안방보다는 대청마루에 놓여있었습니다. 그 당시 텔레비전을 가진 집은 동네에 한두 집 정도라 동네 사람들과 다 같이 보기 위해서는 안방이 아닌 마루에 두어야 했지요. 특히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한일전이 있는 날이나 올림픽이 있는 날이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마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꼭 요즘 시청광장에 모여 월드컵을 응원하는 것처럼 말이죠.



▲ TBC TV 드라마 아씨대본, KBS소장(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어린이들이 만화영화를, 어른들이 스포츠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면 어머니들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텔레비전 앞을 지켰습니다. ‘아씨’(TBC, 1970~1971)여로’(KBS, 1972)는 당시 시청률이 70%이상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 웃으면 복이 와요’(MBC, 1969~1994)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힘든 서민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역할을 했고, 배삼룡, 이주일, 구봉서 같은 코미디언들이 미남배우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던 사람들은 1969년 정말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에 사람이 가서 지면을 밟는 장면, 바로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하는 장면이었는데요. 네모난 상자 안에 조그만 사람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던 그 때, 달나라까지 가는 것도 모자라 그 모습을 집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상상하게 만들었던 텔레비전. 비록 눈 앞 광경처럼 선명하지도 색깔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흑백의 브라운관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가장 신기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