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걸음기자단 History

사상 최초 남북단일팀 그 뜨거운 이름

오늘은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감동의 영화 <코리아>를 통해 스포츠 남북단일팀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출처-영화 코리아


19911~2월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남북선수들의 단일팀 구성을 안건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체육회담이 열렸습니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마침내 합의에 이른 결과였는데요, 남북한 단일팀의 첫 시도가 바로 1991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코리아'란 이름으로 출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북 선수 각각 31명씩 총 62명으로 구성된 코리아 탁구팀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결성된 단일팀이었습니다.

 

 

이 코리아 탁구팀을 주제로 만든 영화가 바로 <코리아>인 것이죠. 영화는 대한민국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최고의 탁구스타 현정화(하지원)와 북한의 탁구 영웅 리분희(배두나)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원래 합을 맞춰 훈련하던 팀으로도 힘든 세계선수권대회를 남북 단일팀이라는 급조된 팀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니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심지어 급하게 한솥밥을 먹게 된 상대편 선수들은 수십년 분단으로 왕래도 없던 곳의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힘을 합쳐 경기를 치러도 부족하건만 남북 단일팀은 연습 방식, 생활 방식, 말투까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뻔한 영화 코리아의 이런 이야기 전개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죠. 당연히 영화적 각색은 있었겠지만 이런 극적인 사건이 진짜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중국을 이기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코리아 여자복식팀(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단일팀을 만들고 갈등만 깊어졌지만 어느새 불협화음을 민족의 동질감으로 이겨낸 남북 단일팀은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과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뤄냅니다. 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부터 남북을 하나로 묶는 하늘색 한반도기가 남북한의 국기를 대신해 사용되었습니다. 국가도 남북한 국가 대신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였고요. 이어 1991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도 남북단일축구팀이 참가,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단일팀 구성은 남북한 최종 협상 타결을 앞두고 여러 차례 좌절, 성사되지 못하다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남북한이 동시 입장하는 쾌거를 이루었답니다. 1991년 코리아 단일팀의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은 남북한 스포츠 교류의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한 민족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준 사건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한걸음기자단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3) 2014.07.31
딱지, 종이인형 같은 그 시절 추억의 장난감을 찾아서  (3) 2014.07.31
关于我们  (0) 2014.07.17
博物館の紹介  (0) 2014.07.17
Museum Overview  (0)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