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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함께 지켜내 더 소중한 평화, 6·25전쟁 참전 유엔군 이야기

병력 지원국 16개국, 의료 지원국 5개국, 물자 지원국 39개국, 물자지원 의사 표명국 3개국. 모두 63개국이 60여 년 전 6·25전쟁이 발발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굉장히 많은 국가죠?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 대해 알아볼까합니다. 63개국 중 3개 나라를 소개해 드릴까하는데요, ‘스웨덴’과 ‘터키’, ‘필리핀’입니다.


▲한국을 지원한 63개국 유엔지원국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전시실) 

 


6·25전쟁 의료지원국 ‘스웨덴’, 경북 ‘경주’와 어떤 인연이?

첫 번째 소개해드릴 국가는 스웨덴입니다. 스웨덴하면 ‘북유럽 국가’ 외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으시죠? 하지만 스웨덴은 뜻밖에 경상북도 ‘경주’와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바로 경주의 ‘서봉총’ 때문이죠. 


경북 경주의 서봉총 모습




1926년 10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왕세자 시절 경주의 고분 발굴현장을 방문하여 금관 하나를 채집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고분에 ‘서봉총(당시 스웨덴은 한자어로 ‘서전국’이라 불렀습니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듬해인 1927년도에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답방 형식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렇게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6·25전쟁 이전부터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었습니다.



6·25전쟁 참전 스웨덴 의료진에게 전달한 훈장 모습▲



스웨덴은 6·25전쟁 당시 ‘의료적인 지원’을 해준 국가였습니다.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국은 스웨덴을 포함하여 노르웨이와 덴마크, 그리고 인도, 이탈리아 총 5개국 밖에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의료 지원국 중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인 1950년 9월 23일, 총 160여 명의 의료요원들을 파견하여 9월 28일 부산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200병상 정도의 야전 병원을 설립하였지만, 군인을 비롯하여 민간인들까지 치료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규모가 400병상까지 확대 되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돌아가지 않고 노르웨이, 덴마크의 의료진, 국제연합한국재건단과 함께 유럽의 선진 의료기술을 한국의료진들에게 전수하였으며, 서울 동대문에 스칸디나비안 교육병원(현 국립의료원)을 설립, 한국 의학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국립의료원 본관 안뜰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클럽은 당시 의료진을 위한 구내식당과 휴게실로 운영되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클럽



현재 국립의료원 입구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3개국의 국기가 새겨진 작은 기념비가 있어 스칸디나비아의 협력과 기여를 기리고 있습니다. 


스웨덴 참전 기념비



스웨덴과의 인연은 또 있는데, 현재 부산의 중심가 ‘서면’에는 ‘스웨덴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6·25전쟁 당시 야전병원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네요.


한편, 스웨덴은 1953년 휴전 후에는 중립국감시위원단 (한반도 정전협정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구성된 위원단)의 일국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터키가 한국과 형제의 나라 된 이유는?

두 번째로 알아볼 국가는 형제의 나라 ‘터키’입니다. 왜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할까요?


터키는 일찍이 1949년 8월 11일에 대한민국을 승인했으며 양국은 1957년 3월8일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특히 터키는 1950년 한국 전쟁 시 대규모 전투 병력을 파병하여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 수호를 위해 꽃다운 인생을 바치고 많은 희생자를 내가면서 용감히 싸워준 고마운 나라이다. 초토화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 속에 우뚝 선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하는 터키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백상기,『터키 사람들과 반세기』,(삶과 꿈, 2007),머리말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터키와의 인연은 바로 ‘6·25전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국과 터키는 인연을 맺고 형제의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용인시 동백동에 있는 ‘터키군 참전비’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에 대해 조사하다가 ‘터키군 참전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터키군 참전비는 영동고속도로 마성IC 인근에 있는데요, 용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살짝 들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3-4위를 결정짓는 경기를 했었죠. 결과는 한국의 패배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6·25전쟁 이후 오랫동안 이어져 온 터키와의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응원을 하는 사람들 손에는 태극기와 터키 국기가 들려있고 서로를 응원했거든요.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죠. 과거의 아픔 속에서 만난 인연이 현재의 우정을 쌓게 해주고 있네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지원 해준 나라, 필리핀

얼마 전에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는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필리핀 재해 복구를 위해 파병된 군부대를 다뤘습니다. <진짜 사나이> 멤버들은 그 곳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필리핀 참전 용사들을 만났죠.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참전 용사들이 ‘아리랑’을 기억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더군다나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보내준 나라였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힘든 상황이었지만 우리나라를 도왔습니다.


이런 필리핀의 도움을 기리고자 국방부는 1974년 고양시에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기념비에는 파병 왔던 필리핀군 부대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필리핀군은 1951년 연천 율동 전투, 1953년 7월 15일 양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에서 큰 도움을 줬습니다.  


경기도 관산동에 있는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



60여 년 전 자국의 전쟁도 아닌 타국의 전쟁, 이름조차 생소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참전한 UN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호한 평화 위에 온 국민의 땀과 열정으로 폐허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써주신 고마운 나라와 사람들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본 글은 한걸음기자단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