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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전주에서 찾는 동학농민운동의 잊지 못할 역사

여러분은 ‘전라도’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다수가 ‘여행지’나 ‘음식’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겁니다. 그렇다면 전라도의 지역 중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전주’ 입니다! 전주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해서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전주에는 맛있는 음식들도 많지만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 등 역사적 장소들 또한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시면 위치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많은 전주 명소 중 가장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동학혁명기념관’을 꼽고 싶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동학운동, 동학농민혁명이라고도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국사책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내용으로, 아마 학생 때 배우지 않으신 분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동학농민운동은 어떤 사건이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동학혁명기념관 건립문



동학농민운동은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 즉 고부민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폭발한 농민들은 동학교도 전봉준의 주도로 관아를 습격하여 횡포를 일삼던 군수 조병갑을 쫓아내고 아전들을 벌했습니다. 그리고 만석보(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에 있던 관개용 저수지.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쌓은 학정의 상징물)를 파괴하고 전라감사의 군대를 격파했죠. 


현재 만석보는 흔적만 남아 있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73년 만석보 터에 비를 세웠다 [출처-공공누리]



그리고는 곡식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부에 조병갑의 횡포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민군은 정부로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죠. 그러나 이 고부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조선 후기 지방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직책)이용태가 오히려 민란 관련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해 동학농민운동 봉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아래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하학리)에 위치한 ‘동학혁명 기념탑’입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들은 정부가 파견한 관리들에 의해 탄압받는데요, 이에 맞서 황토현에서 관군과 싸우게 됩니다.  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그 기세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이후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이 합세한 관군에게 크게 패배하고 동학농민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죠. 결과만 보자면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 그 날의 사건을 되돌아본다면 큰 의미를 가진 사건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외세 자주독립의 정신을 전파하여 일제의 탄압에 맞서는 의병항쟁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3∙1운동과 독립군 활동의 기반이 된 것입니다. 


갑오 동학혁명 기념탑[출처-공공누리]


이처럼 부당한 것에는 당당히 반대하고, 부정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부딪혀 바꿔보고자 했던 조상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요? 





*본 글은 한걸음기자단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