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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물건 이야기

일재 잔재에서 열린 국민의 장으로 바뀐 청와대

일재 잔재에서 열린 국민의 장으로

바뀐 청와대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지만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5년 만에 6.25전쟁이 터져 모든 기반 시설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당장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휴전 후 점차 경제가 안정되면서 하나씩 일본의 잔재를 뿌리 뽑기 시작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1993년 10월 15일에 진행된 ‘일본 총독관저 건물 철거’입니다.

 

경복궁 앞을 막아선 조선 총독부

 

                                   ▲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세겨진 바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1990년 2월 청와대를 새로 짓던 중 공사장 바로 뒤편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푯돌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 문구는 ‘하늘 아래 가장 복 있는 곳’이라는 뜻인데요, 연구 결과, 조선 중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 청와대가 자리 잡은 곳은 고려 때 남경의 이궁(離宮)터였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연무장이나 과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1910년 우리나라와 강제 한일병합을 한 일본은 조선 권위의 상징인 궁궐을 훼손했습니다. 창경궁에는 각종 동물을 옮겨 놓고 임금이 사시던 공간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렸고, 조선 제1법궁, 경복궁은 궁의 일부를 허물고 그 앞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경복궁의 기운을 막기 위해 북악산 산자락, 그러니까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있던 우리 전통 건물을 부수고 일본 총독관저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나라의 성장과 함께 한 청와대

 

일본 총독관저 건물은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에도 철거 되지 않고 미군사령관 관저로 사용되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었는데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4·19 혁명으로 물러날 때까지 12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청와대가 아니라 ‘경무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이었던 만큼, 불리는 이름이나 건축 모양에서 여러 번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청와대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부터입니다. 경무대가 상징하는 정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였지요. 또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외국 귀빈의 방문이 많아지면서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노태우 대통령 때 새로 지었습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청와대

 

마침내 1993년 10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되살리기 위해 옛 총독 관저 건물 철거를 지시합니다. 철거가 끝난 후 총독관저 건물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때 이곳에 있던 건물의 명칭에 따라 ‘수궁터’라는 이름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 지어진 청와대에 대해 알아볼까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에 있는 청와대는 푸른 청기와 지붕이 있는 본관과 여러 부속 건물들로 이뤄져 있는데요. 본관은 대통령이 일을 하는 곳과 외국이나 외부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대규모 연회를 열 때는 영빈관을, 야외 행사장으로는 녹지원을, 그리고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는 상춘재를 사용합니다.


▲ 청와대 본관(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또 춘추관은 대통령 기자 회견 장소로 기자들이 이용하며, 대통령의 비서진들이 근무를 하는 곳은 여민관이라 부릅니다. 이 뜻은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곳이라는 ‘여민고락’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인 청와대는 국민 모두에게 열려있는데요, 청와대 홈페이지에 관람을 신청하시면 청와대 안을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하늘 아래 가장 복 있는 곳’에 자리 잡은 청와대, 그 좋은 기운이 국민과 함께 어우러져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나라로 세우길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