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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물건 이야기

이것이 신문이다!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읽습니다. 인쇄된 신문을 읽던 십여 년 전과는 전혀 달라진 환경이지요. 하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는 종이신문 역시 150년 전에는 신문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는 약 130년 전인 18831031(고종 20년 음력 101)에 처음으로 발행되었으니까요.

 

박영효가 생각해 낸 조선 근대화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간 박영효 일행은 일본의 근대화 된 전신국, 대학교, 육군사관학교 및 포병기계창, 인쇄국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서구적 근대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들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국민계몽이 필요하고 신문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박영효의 건의에 고종은 1883817일 통리아문 내에 박문국을 설치하여 신문을 발행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갑신정변 이전의 개화파

 

한성순보는 열흘에 한 번 발행이 되었고요, 원래는 국한문 혼용으로 펴낼 생각이었으나 활자 준비 등의 문제로 순한문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또 관보(官報)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신문 제 1면은 주로 승정원에서 조정의 소식을 관료에게 반포한 조보(朝報)’를 실었는데, 편집자와 기자 모두가 조선의 관원이었습니다. 기사는 크게 국내관보와 국내사보(사회면 기사), 각국근사(외신기사), 잡록(논문 또는 피처 기사), 본국고백(사고), 시직탐보(물가정보)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한성순보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성순보에 실린 내용은?

 

한성순보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학문인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자주 소개 했습니다. 이는 한성순보의 발간 목적이 조선 사람들이 중국에 얽매이지 않고 드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인데요, 한성순보 창간호를 살펴보면 한국 최초의 일러스트레이션인 지구도해를 실었고, 바로 다음 기사로 지구론을 게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구는 바로 세계를 뜻하는 것이지요.


지구도해(地球圖解) (출처: 경향신문)

 

또 한성순보는 새로운 지식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세계정세의 흐름을 알 수 있게 세계의 현실, 서구 열강의 관계, 청불 전쟁 등도 자주 다뤘습니다. 서구 근대 문명인 전기, 기차, 통신 등도 자세히 소개했지요. 이렇게 서구 문명을 알리는데 적극적이었지만 한성순보의 기조는 동도서기론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이루자는 이론이지요.

 

한성순보는 순한문 신문으로 관보적 성향이 있어서 일반인보다 일부 지식인들한테 인기가 높았고, 백성 일반까지 퍼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국내에 서구 문명을 알리고 세계관을 넓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높습니다. 한성순보는 188412월 갑신정변으로 신문을 발행하는 박문국이 불에 타 발행이 중단되었지만,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18861월 국한문 혼용 신문인 한성주보로 재탄생됩니다. 조선 근대화의 시작은 이렇게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