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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복70년, 가족 내에서 70년을 되찾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다!

 

우리 할머니는 1939, 할아버지는 1938년도에 태어나셨습니다. 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입니다. 북한 지명에 대해 낯설어 하는 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 있는 지도를 직접 꺼내어 황해도의 위치 등 당신의 고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황해도 지도 (출처: 민족백과사전)

 

모두 황해도에서 태어나셨으나, 평양 인근으로 이사를 가셔서 소학교를 다니셨습니다. 소학교에 다니 적의 기억을 여쭤보니 당시 일본어 과목 시간이 가장 많았으며, 할머니는 처음 배우는 일본어가 서툴러 일본인 선생님께 알아들을 없는 말로 많이 혼이 났다고 합니다. 또한 아침에 등교를 하여 수업 시작 전에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고 천왕을 찬양하는 글을 낭독해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활용해 통치하려 했었는지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 과목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관련된 사실보다는 일본 왕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 일본 역사 위주로 배우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70 전이지만 1945 8 15일을 똑똑히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광복 이후에도 며칠 동안이나 일본 천왕의 항복 의사 표명을 담은 음성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증조할머니께서는 아프신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대한 독립 만세 외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거리마다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만세를 외쳐대자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년이 지난 역사의식이 생기면서 독립 당시의 느낌과 상황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한 애국인사들 (출처: 독립기념관)

 

할머니는 광복 이후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우선 교과목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출석을 부를 일본 이름이 아니라 한국 이름으로 불렀으며, 학급 학생 수는 적으면 70명에서 많으면 90명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어떤 기억들보다도, 우리나라가 빛을 되찾은 , 광복에 대한 기억과 월남의 고통과 전쟁에 대한 것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전쟁과 광복을 우리 후손들이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아픔 가지 모두 역사의 켠으로 넘기지 말고, 기념일을 더욱 의미 있게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