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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광복70년, 가족 내에서 70년을 되찾다> 해방둥이 우리 할머니

해방둥이 우리 할머니

 

온 나라가 광복의 기쁨으로 들썩이던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 이들이 벌써 일흔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고된 농사일에 허리가 굽어가는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도 1945년생 해방둥이십니다.

 

1. 할머니의 어린 시절

할머니의 첫 기억은 6.25전쟁이라고 합니다. 5살 무렵의 피난길이 할머니 인생의 첫 기억이라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지내셨던 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와 오빠 그리고 할머니 당신의 기억으로 째깐한동생과 함께 허둥지둥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1.4후퇴 당시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유엔소장, 1951) <출처: 국가기록원>

 

키가 작았던 할머니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언니 손을 놓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아직도 천둥소리만 들어도 그때의 폭격소리가 기억나 천둥을 무서워하십니다.

 

2. 할머니의 청소년 시절

전쟁을 피해 충청도에서 생활하신 할머니는 중학생이 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서울 고모 댁에서 지내며, 고모의 도움으로 학교도 다니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서울 생활이 재미있었지만 혼란스럽고 무섭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할머니가 서울에 계시는 동안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5.16 군사정변 당시 길에 늘어선 군인(출처: 우리역사넷)

 

특히 할머니는 5.16 군사정변 때, 군인 아저씨들이 총을 들고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고는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충청도로 돌아가는 짐을 싸셨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3. 할머니의 청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갈 등록금이 없었던 할머니는 꿈을 접고 다시 가족들이 있는 충청도로 돌아가셨습니다. 서울에 남아서 은행원이 되고 싶으셨지만 형편이 안 되어 눈물을 머금고 다시 충청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죠. 순박한 농촌마을로 돌아온 할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우리 아버지를 낳고, 지금까지도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농촌 생활을 하며, 간간히 라디오를 통해 서울의 소식을 들으셨는데, 가장 놀랍고 흥미로웠던 사실은 지하철 개통소식이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책에서 지하철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 설레고 궁금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서울에 상경해 생활하던 할머니의 큰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시며 별세상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신 것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하십니다.

 

 

[우리 할머니]

 

해방과 동시에 태어나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오롯이 경험하신 할머니. 이렇게 멋지고 자랑스러운 할머니를 직접 인터뷰 하며, 할머니께서 경험하신 긴긴 세월에 이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계속 멋지게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