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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 최규식 경무관 · 정종수 경사

1968121일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 최규식 경무관 · 정종수 경사

 

1950년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뉜 6·25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민족이 둘로 나뉘어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된지 17여년이 지난 1968,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은밀히 간첩을 보냈습니다. 이는 평화로운 남한체제를 뒤흔들기 위해 청와대를 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경찰은 이를 민첩하게 감지했고, 총성이 오가는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용감하게 국가를 지켜냈습니다.

 

 

청운동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정종수 경사 비 안내판

 

북악산 성곽길이 있는 청운동 고갯길에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정종수 경사 순직비가 있습니다. 1960년대 종로 경찰서에서 근무했던 최규식 경무관은 1968121일 세검정에서 자하문방면으로 CIC대원을 사칭한 거동 수상자 31명이 행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같은 날 오후 이를 수상히 여긴 최규식 경무관은 현재 청운동 실버센터가 있는 곳에서 검문을 시작하였습니다. CIC를 사칭한 31명은 검문에 불응하고, 최규식 경무관의 팔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경무관은 이를 뿌리치고 이곳에 배치된 경찰관에게 이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들 31명은 즉시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여 최규식 경무관은 복부 관통상을 입었으나 현지에서 정종수 경사와 함께 격렬한 총격전을 전개했습니다.  31명의 간첩은 1명은 도주하고, 29명 사살, 1명 김신조는 생포되었습니다.

 

 

 

김신조 일당이 도주하며 총격전을 벌였던 자하문이 청운동 고갯길에 있습니다. 이 문은 청와대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로, 1968121일 김신조 무장공비의 사건으로 희생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자하문 근처에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북한 간첩 김신조 일당은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지역으로 도주하였습니다. 북악산 성곽 가장 꼭대기를 지나면 바로 보이는 이 소나무에서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이 있었고, 현재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아 그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분단 후 현재도 북한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8년에는 그 위협이 사회를 크게 불안에 떨게 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시작된 청와대 습격은 자칫 대한민국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21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우리나라의 용감한 경찰의 희생으로 북한의 위협을 극복했던 사건으로, 이를 막았던 두 경찰의 나라를 위한 노력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