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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자유시장경제의 선두자, 김재익

자유시장경제의 선두자, 김재익

 

 

김재익 (출처: 나무위키)

 

1987년부터 1996년까지는 3(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호황으로 인해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을 때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연평균 8.3%의 성장을 계속하였고, 개방과 안정이라는 정책 방향을 정하고 이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 이뤄진 시기였습니다.

1980년 대는 한국경제 성장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시기로, 이를 가능하게 했던 인물 가운데 주역이 김재익 당시 경제수석이 있습니다.

김재익은 서울에서 태어나 196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다시 미국 스탠포드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73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73년 귀국하여 한국은행 조사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등을 거친 뒤, 1974년 경제기획원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한국경제의 근간을 다루는 경제기획원의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5년에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관으로, 1976년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1980년 경제기획원 경제협력차관보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80, 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어, 한국경제의 성장과 안정은 저금리·저물가정책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평소 그의 경제관을 경제정책에 반영하였으며, 그의 경제정책은 이후 계속 한국경제계획의 기저가 되었습니다.

 

그에게서 시작된 시책들을 보면 물가안정화, 정보화, OECD가입, 수입자유화, 금융실명제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물가 안정화 분야가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1980년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8% 였던 것을 1982년에 7%로 줄여버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1983년부터는 3.5%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이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대 낮은 물가 상승률 유지

 

경제성장률 역시 80년에 -3.7% 였던 것을 1983년에 12%대로 올린 것을 기점으로, 이후 평균 10%대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그가 미래를 위해서 추진했던 사업들 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바로 정보화 산업에 대한 투자입니다. 금융실명제와 정보화라는 개념은 시대를 앞서나간 생각이었던 것은 분명하고, 이후 한국의 성장동력 중 하나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했던 금융실명제는 10년 뒤인, 1990년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에 시행되었습니다.

김재익은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의 큰 틀을 '안정·개방·자율'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폭탄테러로 순직하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채와 저성장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으며, 거대한 청년실업의 문제도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가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 다시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1980년대 김재익 한 명의 인물에 의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전까지 어느 정도 경제의 체질이 만들어진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최근에 평전도 나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 김재익과 같은 경제영웅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경제정책은 인기가 없습니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도 결코 이런 정책을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제 말을 믿고 이 정책을 끌고 나가 주시겠습니까?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