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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민주화의 지원자, 김수환 추기경

민주화의 지원자, 김수환 추기경

 

여러분들은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요? 한국 가톨릭 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김수환 추기경이 아닌, 종교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김수환 추기경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1898, 공사중인 명동성당의 모습(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야기는 1969,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된 뒤부터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의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유신체제의 압제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지요. 당시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때면 시국 미사를 통해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로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지원하였습니다. 경찰과 정부의 압력 속에서도 명동성당은 탄압받는 이들을 보호하며 이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평화를 일구어 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여러 사건과 사태를 겪으면서 인권 사회 정의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압력은 물론 교회 안에서 쏟아지는 숱한 비판까지도 감수해야했습니다.

이렇게 교회와 정부가 충돌하던 때, 19747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바로 지학순 원주교구장 주교 구속 사건입니다. 지학순 원주교구장 주교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맨(민청령학련) 학생들에게 활동자금을 대줬다는 혐의로 구속됩니다. 그로부터 두달 뒤 9 26일 명동성당에 사제와 신자 약 2,000여 명이 모여 시국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정부와의 골도 깊어져만 갔습니다.

 

 

19802 29일자 「한국일보」호외: 지학순, 김대중, 윤보선 전 대통령 등 687명이 대규모 사면복권조치를 당했다는 소식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수환 추기경은 1970년대의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무자비한 노동에 지쳐 성당 안으로 시위를 하러 온 동일방직 여공들을 위해 명동성당에서 기도회를 열기도 하고 주교단과 개신교 쪽 한국교회사회협의회는 노동자 인권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김수환 추기경,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방송·평화신문, 243)

 

 

▲동일방적 인천공장: 1955년 동양방적으로 설립돼 1966년 현 동일방직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1980년 신 군부 세력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1986 6·10항쟁 때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려는 정부에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출처:김수환 추기경,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방송·평화신문, 225.) 라고 할 정도로 민주화 운동을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김수환 추기경은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민주화 열사들의 든든한 지원자였습니다. 이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이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김수환 추기경이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모습은 결코 우리의 가슴속 한 켠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