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5월도 끝나가고 어느덧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네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불릴 만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여러 가지 기념하는 날이 많은데요,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 5월에 또 있습니다! 바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계엄군의 독재 정치에 반발하여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민주화운동입니다.
그렇다면 광주 민주화운동은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을 살펴보려면 1년 전인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출처: (사)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됨(10.26사태)으로써 한동안 불안한 정치체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를 틈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12.12군사반란), 순식간에 무력으로 군부와 정치권까지 장악하게 되었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 때에 이어 다시 군사통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군사 독재가 재발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여, 국민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전국의 학생 연대는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다‘ 라고 생각했던 광주의 학생들은 다음날인 5월 18일, 계엄령 철폐와 휴교령 철폐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비상계엄군은 광주의 각 대학을 장악했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했습니다. 이에 학생들과 비상계엄군 간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민간인들까지 계엄군에게 무차별한 폭행과 구타를 당하게 됩니다.
결국, 광주 민주화운동은 5월 27일 새벽 2만 5천 명에 달하는 군을 투입한 무력진압 끝에 사망자 153명, 행방불명자 70명, 부상자 3,193명((사)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집계) 등 많은 희생자들을 내며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확산시키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5.18 여고생 일기
지난 2011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처참했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5.18 여고생 일기’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기록해놓음으로써 1980년 5월의 역사는 이제 더이상 잊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고 하셨죠.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 외쳤던 1980년 5월 18일의 함성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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