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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 전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심은경.

당연히 한국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지만, 이름은 주한미국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의 한국 이름인데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초의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미국 대사가 있었던 그녀, 오늘은 캐슬린 스티븐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출처: 위키백과]


 

캐슬린 스티븐스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미국 여성 외교관인데요. 한국에서는 심은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한국 정부 수립 이후 21 주재 미국대사 가운데 최초의 여성이자,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미국 대사였습니다.

 

텍사스 주에서 태어나 애리조나 주에서 성장한 그녀는 애리조나 프레스콧대학(Prescott College)에서 동아시아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매사추세츠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1975 평화봉사단원(Peace Corps)으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한국에서의 복무를 자원한 그녀는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는데요. 이때의 경험으로 능통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것이죠! 이후 미국 대사 선서를 마친 소감을 밝히는 연설에서도 천고마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한국 속담을 또렷하게 발음할 정도로 뛰어난 한국어 실력자가 있었습니다.





1975 평화봉사단 활동 단원의 한국어 연습 노트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학을 졸업한 그녀가 선택하였던 평화봉사단 단원 활동, 1975년부터 1977년까지 한국에 파견되었던 그녀는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서 한국인 교사와 짝을 이뤄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에 낯설 수밖에 없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인 제자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각별했으며, 태권도장에서 6개월가량 태권도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두터웠다고 하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 아이의 돌잔치에도 찾아가고, 마을 주민들과 친분을 쌓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졸업 1978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30년간 외교관으로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돌며 생활하였는데요. 1983년에는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3 동안 근무하였으며, 중국과 영국 등을 걸친 끝에 2008 8 상원의 인준을 받아 드디어 대한민국 주한미국대사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 대한민국 주한미국대사로서 활동하며 우리나라와의 인연을 이어갔는데요. 하지만, 그녀의 주한미국대사로서의 길은 이전과 달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08 1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녀를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지명한 ,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정식 임명을 받을 있었는데요. 4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과한 뒤에도 5개월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는 상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공화당 보수파인 브라운백 상원의원으로 인하여 본회의 처리가 지연되었기 때문인데요. 브라운백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인준 유보 방침을 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차관보가 의회에 나와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대해 공개약속을 뒤에야 스티븐스 대사의 인준이 가능해졌고, 그녀의 주한미국대사로서의 활동 또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한미국대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캐슬린 스티븐스. 그녀는 지금까지 한국에 부임했던 어느 대사보다도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부임 중에도 직접 한국어를 사용하여 블로그를 운영하며 소통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녀, 많은 분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를 그리워하고 있을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