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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 국민의 손으로 역사를 바꾸다, ‘4·19혁명’과 ‘6월 항쟁’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 오히려 조건 없이 집회를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얼마 서울행정법원에서 청와대 주변 행진을 허용하며 밝힌 결정문 일부입니다. 재판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자신의 의견을 있는 수단이자, 권리라고 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집회, 시위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위는 언제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 역사의 전환점 됐다고 여겨지는 1960 4·19혁명 1987 6 항쟁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전시실에 전시된 4·19혁명 당시의 모습>



1. 1960 4·19혁명,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 내다!


1960, 당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선거도 정확히 이뤄질리 없었습니다. 1960 3 15 치러진 ·부통령 선거. 당시 지금과 다르게 이미 12 동안 정권을 잡고 있던 이승만은 다시금 당선됐고, 부통령으로 출마한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야당의 선거원들은 계속해서 부당한 탄압을 받았고, 선거 당일에는 투표장에 반공청년단 단원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대한반공청년당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1960 자유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했던 선거전위대로, 부정선거를 위해 동원한 깡패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이 투표장에 나타나 시민들을 감시하였고, 농촌 지역에서는 명이 조를 이뤄 투표하는 3인조, 9인조 투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선거 후에도 조직적으로 결과를 조작해 결국, 이기붕은 장면을 제치고 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모든 과정이 부당하게 이뤄졌던 3·15선거. 선거 이후 전국적으로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는데요. 이런 와중에, 마산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참석했던 16세의 마산 상고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습니다



 

<김주열 열사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오른 ,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다. 3·15의거 기념사업회>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4 19, 3 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은 이들에게 사격을 가했습니다. 19 이후에도 데모가 계속되었고, 전국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했습니다. 결국 4 21 내각이 전국의 혁명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됩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외치는 시민들. 한겨레>



2. 1987 6 항쟁, 직선제로의 개헌을 이끌어 내다


1979, 12·12사태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후 시민들은 계속해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며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은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탄압했습니다. 이러던 1987 1, 서울대학교 학생인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를 받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시민들의 분노는 정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 / 출처 : 고발뉴스닷컴>

 


여기에 더해 전두환 정권은 개헌 논의를 하지 않고 유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4·13 호헌조치 발표하게 되고, 많은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여기에는 학생과 일반 시민부터 시작해 학계, 문화계, 종교계 인사들까지 모든 계층의 시민들이 동참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시위 속에서 6 9 시위 도중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규탄시위가 크게 퍼졌고, 달여에 걸쳐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로의 개헌과 민주화 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 선언 발표합니다.

 

밖에도 우리 역사 속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시위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위는 우리 사회가 혼란에 직면했을 때마다 우리 사회를 단계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무조건 집회를 억압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국민이 집회를 통해 어떠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지에 관심을 가져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