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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삼균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 7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우리나라의 헌법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그리고 각인의 기회의 균등에 대한 사상적 바탕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기초사상이 바로 조소앙 선생이 주창한 삼균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삼균주의는 균등, 평등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 · 경제 · 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과 개인의 균등생활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와의 균등생활을 실현하며 궁극적으로 세계일가를 추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삼균주의는 조소앙 선생이 1917 임시정부 수립을 촉구한 [대동단결선언], 1919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에도 분명하게 반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1919 4 11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에도 선생의 뜻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이념을 구축한 조소앙 선생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서 유학을 배운 선생은 15세의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게 됩니다. 일제의 침략을 성토하다가 17세의 나이에 성균관을 중퇴하고 황실 특파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나아가 선생은 26세에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세우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민족 해방 1945 12 1, 김구 등과 함께 귀국하여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원칙으로 하여 1947 2 국민의회 의장으로서 납북협상운동을 전개하였지만, 남북이 각각 정부를 수립하여 분단되면서 1950 2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의 기쁨도 잠시, 6.25 전쟁이 발발하며 북측에 강제 납북되어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지게 되는데요. 1956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되어 중립국 통일 사회 건설을 주장하였으나, 반혁명분자라는 혐의에 대한 단식 항쟁으로, 1958 9 10 평양에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이념을 구축한 조소앙 선생.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88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고, 북한에서는 1990 조국통일상을 추서하여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는데요. 우리 또한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삼균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