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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잊혀가는 역사의 흉터 3 – 나석주 의사 의거 터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나석주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26 12 28 경성(일제 강점기 당시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러한 말이 울려 퍼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시간을 거슬러서 1926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 (출처: 노컷뉴스)

 


식민지 조선의 경제를 장악하고 조선의 각종 이익을 일본인들이 맘껏 누리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대한제국 시기였던 1908년부터 설치되었는데요.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진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당시 식민지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자체였습니다. 20세기 서양에서부터 불어온 근대화의 바람을 일제는 완벽하게 차단하고 시간을 거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본국인들이 조선의 토지를 모두 장악하고, 식민지 주민들을 소작인으로 전락시켜 민족자본의 탄압을 도모한 지주제를 시행한 것입니다. 경술국치 이후부터 곧바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 통해 위의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선봉에는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있었죠.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시무시한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에 1926 12 28 난데없이 총성이 울립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나석주 의사입니다



나석주 의사 (출처:위키피디아)

 


1892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 의사는 대지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경술국치와 함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땅을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활동하기도 하며 독립운동에 몸을 담은 나석주 의사는 1926 마침내 김구 선생의 요청으로 중국인으로 위장하여 경성에 잠입하여 의거를 계획하게 됩니다.

 

마침내 D-day 12 28,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로 잠입합니다. 경비가 삼엄하였던 동척 대신 그는 먼저 맞은편의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폭탄은 불발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석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식산은행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틈을 노려 그는 권총을 꺼내 들고 다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을 모두 사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나석주는 폭탄을 투척했지만, 역시도 불발이었습니다. 결국, 쫒아오는 경찰들을 피하고자 도주를 감행하고 쫓아오는 일경들을 사살하다가 결국 자결을 택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청년은 무엇을 위해 그리 뛰었던가.'

 

나석주 의사는 무엇을 위하여 그리 뛰었을까요?

 

비록 그의 의거는 폭탄의 불발로 절반만 성공했다 있지만, 이어지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한국 독립운동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나석주 의사 의거 (출처: 노컷뉴스)

 


어느덧 2016년의 끝이 다가오는 12월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기사를 기재하며 우리 근대사에 있는 많은 아픔을 조명해 보며, 한편으로는 아픔을 치유할 있는 희망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기사를 기재하며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던 동료 기자들과 읽어주셨던 많은 시민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읽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