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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는 History/전시 소개

상설전시실1. 대한민국의 태동#3

상설전시실1. 대한민국의 태동  #3 세번째 이야기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려서 잘 아시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설전시실1> 세개의 중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주제1. 자주적 근대 국가의 꿈과 좌절

                                         중주제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중주제3. 1945년 8·15광복

 

 

                                                                                         

지난 포스팅에서는 상설전시실1. 대한민국의 태동

두번째 중주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시에 대해 짧게 소개를 해드렸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섹션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 고난과 수탈의 모습과  

3·1운동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모습, 

대한민국 정부의 원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그 활동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기억나시죠?

 

 

이제 상설전시실 1의 마지막 전시 주제인 "1945년 8·15 광복"의 전시 내용을 살펴볼까요? ㅎㅎ  

 

 

 

[1945년 8·15 광복 _ 전시 내용 요약]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다.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섰고,

북한에는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해 갔다. 좌익과 우익은 강대국들의 신탁통치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의견을 달리하면서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한반도 내의 통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해졌다. 

 

 

 

 

 일본이 항복하기 이전에 한국인들은 식민 통치 36년 동안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광복은 일본이 연합국 미국과 소련에 패하면서 광복이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만주와 한반도에서 소련의 공격을 받자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독립국가 건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죠.

 

 

 

8월 15일 정오에는 일본 왕의 항복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이 한국의 광복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죠.

그날 오후 입에서 입으로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이 퍼져나갔고 이튿날 아침,

급하게 만든 태극기를 앞세운 사람들은

'조선 독립 만세', '축 해방','우리 정권 수립'이라고 쓴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 삼창을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며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이날 석방된 독립 운동가들도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일제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을 맞은 8월 15일 기념하고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가의 사진으로 숫자815를 만들었고

숫자 하단 스크린을 통해 사진이 없거나 사진을 구하지 못한 약 8,000명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모두 표출하였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엔 항일 독립운동가의 숭고함이 많이 묻어있는 곳입니다.  




광복에 관한 영상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 일반적인 영상과는 어떤점이 다르게 보이시나요?

사진으로는 잘 확인이 안되지만;;  바로!!  영상 스크린 레이어(layer)가 두개입니다.

그래서 투레이어드(two-layered)영상이라고 부르는데요,

앞 스크린에서는 주로 인물이, 뒤의 스크린에서는 그 배경이 나타나 입체감과 깊이감이 있는 영상으로 보이게 되죠

 

 


광복 기념 관련 우표 ㅣ 2.5x3cm l 1945년

일제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기념으로 발행된 태극기 우표 등 각종 우표 

 


해방 조선 기념 엽서

광복의 기쁘은 새나라 건설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졌다. 기념 메달, 엽서, 포스터, 서적 등에서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38선이라는 군사적 분계선을 설정하자고 소련에 제안했고, 소련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남한과 북한에서 각기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점령 통치를 펼쳐 갔습니다.

이렇듯 미국과 소련에 의해 군사적 분할 점령선으로 설정된 북위 38도선은 결국 남북 분단을 낳는 시초가 되었죠...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복제된 38선 팻말이 전시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마음이 짠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분단된 조국의 아픔이 아픔인 것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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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북한 각지의 인민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한 반면,

미국은 남한에서 직접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미군정은 남한의 경제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행정 구호 원조로는 식료품, 피복, 의약품, 연료, 석유류 등을

경제 부흥 원조로는 철광석, 중유, 면화, 건축 자재, 화학 약품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광복 후 한국사회는 일본의 식민 잔재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잃어버렸던 이름을 되찾고 한글을 되살리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에 성명복구령이 시행되었고 한글교과서가 간행 되었습니다.

여러 한글 잡지가 쏟아져 나왔고, 폐간되었던 동아일, 조선일보가 복간되고

조선인민보, 대동신문 등 새로운 신문이 창간되기도 했죠 :)


광복 직후 "한글 맞춤법 교본" ㅣ 1946 ㅣ 장한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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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복의 기쁨이 있었지만

외세의 침략과 나라를 잃은 슬픔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상설전시실1은 어둡게 구성되어 있고,

체험이나 화려한 영상 기법이 많지 않습니다.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전시실의 느낌이 달라지는 관람Tip을 마지막으로 드리며 

상설전시실1의 소개를 이상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