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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통행금지, 알고 보면 조선시대부터?



가끔 시대극이나 과거가 소재인 드라마 속에서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귀가를 서두르던 모습이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밤에도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통행금지라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겠지요. 한편, 이러한 야간통행금지가 조선시대에도 시행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야간 통행금지 바리케이트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시대의 한양에는 조금 특별한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10시가 되면 야간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을 무려 28번씩이나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인경이 울리고 나면 비로소 한양에 통행금지가 시작됐음을 있었습니다

 

또한, 소리와 함께 도성의 4 문은 전부 닫히게 되며 이를 인정이라 불렀는데요. 순라군들이 순찰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통행금지 제도였습니다.



<도성 순찰시 순라군이 사용하던 / 출처 : e뮤지엄-공공누리>



이후 새벽녘에(4시경) 북을 33 쳐서 통행금지의 해제를 알렸는데, 이를 파루라고 불렀습니다. 밤과 낮이 음양이 다르므로 인정 파루 달라야 하기에, 밤에는 종으로, 그리고 아침에는 북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 통행금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인정과 통행금지가 해제되었음을 전하는 파루의 역할이 반대라고 있는 것이죠!



<곤장 / 출처 : doopedia.co.kr>



특이한 점은 8시부터 12시까지 여성들은 외출할 있었다는 것인데요. 당시 내외법 때문에 시간에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양반, 상인 신분의 여성들은 시간에 출입했다고 합니다.

 

만약 통행금지를 어길 시에는 즉결처분으로 맨살에 곤장을 맞아야 했습니다. 10대를 맞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2 어기게 되면 20, 3 어기게 되면 30 어기는 만큼의 10배를 맞아야 했습니다. 또한, 시간에 따라서도 체벌의 수위는 달라졌다고 합니다. 12시가 넘은 후에는 여성들의 통행도 금지됐기 때문에 체벌을 피할 없었는데요. 여성의 경우에는 옷을 벗지 않고 위로 곤장을 때렸다고 하네요.

 

시대가 변한 지금, 오히려 낮보다 밤의 활동 시간이 길어져가는데요~ 조선시대의 통행금지를 알고 나니 10 이후 시간이 새롭게 느껴지는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