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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는 History/전시 소개

상설전시실3.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첫번째 이야기




박물관 5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 3의 첫번째 소개입니다 :)

 

 

상설전시실3에서는 1961년부터 1987년까지의 비약적인 한국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의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게 만드는 전시품이 많이 있어,

관람객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3전시실은

 

 

1. 경제개발과 산업화

2. 변모하는 도시와 농촌

3. 시민사회의 성장과 민주주의

 

 

라는 세가지의 중주제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상설전시실3의 첫번째 중주제, '경제개발과 산업화' 의 전시 내용 안내해 드릴게요~

 

늘 그렇듯, 전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합니다!

  남,북한 간의 긴장 상태와 대결 구도는 지속되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해 수출 지향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도 힘썼다.

산업 역군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벌어들인 외화는 어려움을 겪던 한국 경제에 큰 힘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6·25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 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경제기획원을 설립하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며 경제개발에 착수했죠.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ㅣ 1967-1971 ㅣ 18.7x25.8cm ㅣ 1966년

 

1966년 정부가 발간한 제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설명 책자.

2차 5개년계획에서는 '산업구조 근대화와 자립경제 촉진'을 기본 목표로 하고,

화학·철강·기계·공업분야에서의 수입 대체와 경공업품 수출 증대를 적극 추진하였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수출품의 변화를 한 번 살펴볼까요?^^

 

<주요 수출 품목의 변화>

1950년대

1970년대

1980~90년대

2000년대

오징어, 한천, 철광석,

중석(텅스텐) 등 1차 산품 위주

섬유류, 합판, 가발 등 경공업품

철강, 선박, 전자 제품, 자동차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선박,

석유제품 등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을 갖춘 숙련된 인력의 양성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죠.

정부는 과학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한국과학원 등을 설립하여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산업발전은 물론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 안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이러한 정부 주도의 탄탄한 경제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국민들의 성실한 노력이 보태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근로자의 해외 파견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나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 파독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근로자의 편지와 현지에서 사용했던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하지만 각종 경제개발 정책과 무리한 투자 계획에 인플레가 가속화되는 등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내자 동원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눈을 밖으로 돌려 외자 도입을 강구했는데요, 그 방안 중에 하나가 바로 한일회담이었습니다.

경제개발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6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을 비밀리에 합의했습니다.

굴욕 매국 외교라고 강하게 반발한 야당가 대학가는 대규모 시위(6.3시위)로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정부는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억눌렀죠.

이렇게 타결된 회담에 따라 자금이 들어와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댐 건설에 사용되었습니다.



▲6·3시위 관련 구속학생 명단 ㅣ 30x21.4cm ㅣ1964 ㅣ 국가기록원

 

 

 

나라 안으로 잘살기 위한 노력만 계속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한반도는 휴전 상태였고 북한은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군사도발로 한국을 위협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무장공비 침투, 판문점 도끼 만행, 남침용 땅굴을 파는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자

한국 스스로 국방을 책임질 필요가 커졌습니다.

정부는 조선소, 특수강 등의 공장과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무기 국산화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이윽고 1978년, 사거리 180km의 최초 국산 지지대 유도탄 '백곰(NHK-1)'을 개발해 내는 성과를 이뤘죠.  



▲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지지대 유도탄 백곰(NH-1)의 축소 모형  l  실제 길이: 11.92m, 폭:3.5m

 

 

 

하지만 대립이 있으면 화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홰해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에 온 나라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1960~2000년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한국은 40여년 만에 달성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이때(1970년) 완공되어

서울과 부산까지 이동시간이 5시간으로 짧아졌고,때문에 물류 운송이 원활해져 경제성장의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또한 산업구조가 급격히 고도화 되어 농업국에서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변모했고,

1970년대 초 북한 경제츨 추월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이러한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한국의 눈부신 압축 성장은 특정 한 사람만의 업적이 아닙니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기업인, 정부의 계획과 전력,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국민 모두가 일궈낸 합작품입니다.

 

 

 

 

 

대한민국 1호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를 아시나요?

 

현대자동차는 1972년 포드사와의 합작 투자가 결렬되자 고유 모델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현대는 1974년 6월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디자인과 일본 쓰비시 엔진을 사용한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를 개발하고

1976년 1월 부터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고유모델 승용차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포니는 출시 첫해에 국내 승용차 시장의 43%를 점유하며 돌풍을 일으켰죠.

 



여기까지가 대한민국 경제 개발과 산업화의 역사를 다룬 3전시실의 첫번째 중주제 였습니다.

 

 

 

헥헥...

전시 소개가 은근 시간이 오래 걸린답니다...

블로그 잘 운영하시는 분들...

대.다.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