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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한국복싱 첫 세계챔피언, 김기수>


어느덧 6월이 지나가고 이제 2016년도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갑자기 찾아온 것만 같은 7월만큼이나 1966년에도 우리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국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를 소개해드릴게요~




1938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김기수는 1951 1.4 후퇴 당시 남쪽으로 내려왔는데요. 전라남도 여수에 정착한 그는 1954 여수 여항중학교에 들어가 육상부 단거리에서 활약하다 복싱으로 전향하였습니다. 아마추어 복싱 데뷔 1958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 웰터급 금메달을 따게 되고, 1961년에는 이를 계기로 프로로 전향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복싱에 두각을 보이던 그는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있는 경기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결정전이었습니다.





경기 중인 니노 벤베누티와 김기수(출처: 나무위키)



1966 6 25, 서울 장충체육관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는데요.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니노 벤베누티와 김기수 선수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6,500명이 가득 메운 장충체육관. 대다수 전문가가 김기수가 절대 열세라고 평가했는데, 위에 오른 김기수 선수는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작과 함께 벤베누티의 왼손에 안면을 강타당한 김기수는 간신히 1회전을 버틴 지루한 탐색전을 계속했는데요. 하지만 초조해진 벤베누티의 동작과는 달리 김기수는 차분히 거리를 유지한 유효 펀치를 날렸고, 이는 점수로 이어갈 있었습니다.

 

 



한국복싱 세계 챔피언이 탄생하다!


!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침묵 속에 2-1 판정승을 선언하며 주심은 김기수의 팔을 번쩍 들어주었습니다. 한국 프로복싱 역사상 세계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박정희 대통령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받고 있던 만큼 이번 경기의 승리는 그를 한순간에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기 충분하였습니다.

 




WBA J.미들급 타이틀 획득  임택근 아나운서와 인터뷰하는 장면 (출처김기수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국민에게 희망을 전하다


" 선수, 이길 자신 있어요?"

" 먹던 힘까지 다해서 노력 하겠습니다.

니노 벤베누티와의 경기를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과 김기수 선수가 나눴던 대화입니다. 대화 대통령이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대전료를 내주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에 경기는 성사될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131달러였던 당시, 무려 5 5,000달러라는 높은 대전료를 지불할 만큼 영웅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던 우리나라, 김기수 선수의 승리는 국민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희망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를 보며 다른 챔피언을 꿈꾸었겠지요. 이렇듯 김기수 선수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희망과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챔피언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2 이탈리아에서 열린 원정 3 방어전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뺏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민들의 영웅으로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김기수 선수, 그가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자리까지 있었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