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그 해 여름을 기억하시나요? 때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고, 대한민국의 거리 곳곳은 유래 없던 월드컵 4강 진출에 대한 흥분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모습 (출처: 공유마당(김종호)
온 나라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붉은 열기에 물들어 있던 그때, 한 쪽 바다에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지키고 있던 우리의 해군들이었습니다.
서해 NLL에서는 전부터 북한 경비정의 침범이 잦았는데, 1999년 6월 15일에도 제 1연평해전이 일어났었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을 이용하여 북한 경비정의 선체 뒷부분을 부딪쳐 막는 밀어내기 전술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당시 우리나라의 교전수칙의 허점을 노리고 2002년 6월 29일에 제 2차 연평해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시 우리나라 해군의 교전수칙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이렇게 5단계로, 북한 군함에 대한 우리의 공격권이 굉장히 수비적이었습니다. 결국 일부 부상자만 발생하였던 제 1연평해전과는 달리 제 2연평해전에서는 6명이 전사, 18명이 부상 그리고 참수리 357호의 침몰 등 많은 피해와 가슴 아픈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 해군은 이것을 교훈 삼아 교전수칙을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이렇게 3단계로 단순화시키게 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당시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져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작년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357호정의 갑판이 전우들의 피와 신음소리로 번져갔을 때 그 참담한 심경을 우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뜨거웠던 월드컵에 대한 기억에 비해 연평해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선명한가요?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지금도 이렇게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죠. 연평해전의 용사들을 비롯한 대한민국을 사랑하셨던, 대한민국을 지키셨던 많은 분들을 항상 기억하며,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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