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약 70년 전에도 지금의 아이돌 가수만큼 큰 인기를 누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 공연마다 열성팬이 따라다니고, 화려한 의상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누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바로 여성국극단입니다.
여성국극은 우리 현대사에서 짧고 굵게 빛났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연극 장르입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국극’이라고 하면 ‘창극’을 말하는데요. 여러 사람이 배역을 맡아 판소리 가락으로 연기를 하고, 극을 이끌어 나가는 일종의 연극이지요. 원래는 혼자서 부르는 우리 전통 판소리를 여러 명이 나누어 부르다가, 차차 연극에 가까운 장르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별하나>의 김경수와 김진진 ⓒ영희야놀자
남성을 연기한 여배우들
여성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았습니다. 때문에 남자 역할 또한 여성들이 맡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공연과는 달리 남자 역할을 맡은 여성 배우들의 연기력이 그 작품의 성패를 좌우했다고해요. 배우들은 목소리를 굵게 내고, 눈가에 진하게 분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간 남자 역할을 도맡아 해왔던 배우들은 아예 목소리나 걸음걸이, 행동과 스타일이 남자처럼 바뀌기도 했습니다. 배역을 위해서 수백 번 연습을 하고 체득을 했던 것들이 여성국극 배우들의 몸에 마치 옷처럼 입혀진 것입니다.
여성국극의 치솟는 인기
여성국극의 인기 또한 실로 대단했어요. 분장을 한 배우가 휘적휘적 지나가면 옆에서 환호성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연을 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던 열성팬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배우는 한 열성팬이 부탁하여, 남장을 한 채 신랑 역할로 가상의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고 해요. 지금도 여성국극의 열성팬들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서 배우들에게 힘이 되어 준다고 합니다.
여성국극배우 조금앵과 한 여성팬의 가상결혼식 ⓒ 한국일보
인정받지 못한 여성국극
이렇게 당대에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여성국극! 연출이나 안무, 반주 역시 당시에 우리나라 최고로 불리던 사람들이 함께 했었다고 해요. 그러나 1960년대에 들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고 말았는데요. 이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그리고 큰 인기만큼 여성국극 단체가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인데요. 또한,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으며, 체계적인 후진양성 시스템이 부족했으므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국가에서는 국립극단이나 국립오페라단 등 국립예술단체들을 설립하고 문화예술발전을 지원했어요. 하지만 여성국극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일류 연출가나 스태프들이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성국극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성국극이 대중들의 취향에 맞추어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주제나 표현방식 역시 진부하다는 비판 받았습니다. 여성국극을 ‘여성들만의 사이비 예술’, ‘한국 연극사의 오점’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요.
급속한 몰락과 장르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성국극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한국 연극사의 한 장면을 그려냈습니다. 여성들만이 공연을 하면서 그들만의 표현방식과 예술성을 표현해냈고, 여성들의 주체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또한, 근대화된 극장 문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전통국악인 판소리가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출현되었다는 점에서 여성국극은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동안 화려하게 빛났던 우리의 창극, 여성국극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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