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2상설 전시관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6.25전쟁의 참혹한 실상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근대국가의 토대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내용의 전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중 전시장에는 1950년 흥남의 겨울이라는 이야기 아래 메러디스 빅토리호라는 배가 구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로 6.25 전쟁 중 일어난 흥남철수작전을 주제로 한 전시인데요. 오늘은 영화 <국제시장>과 <굳세어라 금순아>의 소재가 된 1950 흥남철수작전과 당시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의 생명을 구했던 현봉학 박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구현된 메러디스 빅토리호>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한국군은 남북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전세는 다시 역전되는데요. 결국,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군과 UN군은 맥아더 장군의 명령 하에 결국 흥남에서 해상 철수를 준비하게 됩니다. 군의 철수 소식을 들은 흥남 주민들은 피난을 가기 위해 부두 가로 모여들게 되는데요. 무려 그 숫자가 10만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 흥남철수작전으로 탈출하고 있는 피난민 / 출처 : news.joins.com 2016.12.21. >



흥남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곧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피난민들은 마지막 피난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필사적으로 승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원해 봐도 수송선에는 피난민을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많은 피난민들이 꼼짝없이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그때, 배 안의 무기 대신 피난민들을 태우자고 주장했던 이가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소아마비 후유증을 가진 비군인 신분 미군 제10군단의 민사부 고문 직책을 맡았던 현봉학 박사였습니다. 



< 현봉학 박사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우리가 떠나버리면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중공군의 공격에 몰살당하고 말 겁니다!” 


현봉학 박사는 먼저 알몬드(Edward Almond) 장군에게 10만 피난민의 수송을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과 장비를 먼저 철수시키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피난민을 태울 여력까지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현봉학 박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함정 탑재의 기술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 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 참모였던 미 해병대 포니(Edward S. Forney) 대령에게 다시 한번 간곡한 요청을 하게 되는데요. 결국, 그의 진심과 간절함에 현봉학 박사의 바람대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무기 대신 피난민들을 수송하게 됩니다. 



< 흥남 철수작전 작전도 / 출처 : 군사편찬연구소 DB >



1950년 12월 24일.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은 무기를 모두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여 명을 태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출항 전 흥남에 남아있던 군 물자와 공장 등의 시설을 모두 폭파한 뒤 약 10만 5천여 명의 군인과 9만 8천여 명의 피난민이 197척의 배에 올라타 거제도 장승포로 귀순했는데요. 이 사건은 이후 ‘흥남철수작전’으로 불리게 됩니다. 현봉학 박사는 이때의 일을 “피난민들은 선박 구석구석뿐 아니라 차량 밑, 장갑차 위에서 모세의 기적처럼 홍해를 건너는 심정으로 거제도에 왔다”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으로 1,200여 명의 유대인을 살려낸 영웅 쉰들러와 같이 한국의 쉰들러이자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정작 그는 마지막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 10만여 명의 목숨을 살렸지만 100여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는 자괴감으로 남은 일생을 보냈다고 하네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관 / 출처 : http://a1k1.blog.me/220601019009 >



1950년 겨울, 흥남의 그 날과 전쟁 속에서 많은 피난민의 목숨을 구하며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주었던 현봉학 박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 2전시실에 구현된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그날의 흔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느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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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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