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1편
그곳에는 항상 태극기가 있었다
우리는 나라의 중요한 날, 기쁜 날, 그리고 슬픈 날에도 반드시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 아래서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서지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제1전시실 중앙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여러 개의 태극기를 전시해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현장 곳곳에는 언제나 태극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1전시실 모습
조선국기, 자주독립국임을 알리는 표시
1871년 신미양요 이전까지는 군주를 상징하는 용기(龍旗) 또는 호기(虎旗)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는 따로 없었지요. 그러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근대적 의미의 국기제정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청나라의 황준센은 청나라의 국기인 ‘황용기(黃龍旗)’를 변형시켜 사용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우리 정부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고종은 청나라의 제안을 거절하고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알릴 수 있는 국기를 만들라고 명을 내립니다. 이에 김홍집이 ‘태극’과 ‘8괘’가 들어간 ‘조선국기’를 만들었고, 이를 4개월 후 수신사로 일본에 가던 박영효가 건곤감리
(乾坤坎離) '4괘'만 이용하여 그린 것이 태극기의 원형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최초의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자국국가임을 해외에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일본으로 간 수신사 일행은 가는 곳마다 조선국기를 게양하여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도 대한제국관에 조선국기를 휘날리게 함으로써 대한제국이 청나라의 속국도, 일본이나 미국에 지배당하는 국가도 아닌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임을 만천하에 알렸지요.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고종의 선물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고종이 자신의 외교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O.N. Denny)에게 하사한 ‘데니 태극기’입니다. 데니는 <청한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선이 엄연한 독립국임을 주장합니다. 때문에 청의 미움을 받고 강제로 미국에 돌아가게 되었는데요,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종이 그에게 ‘조선국기’를 선물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간직되어 오다가 후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돌아옵니다.
▲데니 태극기, 189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태극기’는 독립만세운동의 암호
이번에는 '태극기'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국기를 ‘태극기’라고 부르게 된 때가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부터인 걸로 알고 계신데요, 1896년에 발간된 독립신문에 ‘태극기’라는 단어가 이미 등장하여 이는 잘못된 정보임이 드러났습니다. 독립신문은 독립문건립성금을 모으기 위해 애국적인 노래들을 소개했는데, 이중에 ‘태극기’ 혹은 ‘태극긔’가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르 프티 주르날 : 파리 만국박람회를 다룬 잡지(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태극기에 적은 독립의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얘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태극기가 있는데요, 바로 ‘김구 태극기’입니다. 임시 정부 주석인 김구 선생이 안창호 선생의 부인인 이혜련 여사에게 보낸 이 태극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친필로 적혀있습니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참으로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가득 담긴 태극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좌)태극기 목판, 1919년, 독립기념관 소장(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우)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 1941년, 독립기념관 소장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민증, 1924년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복의 기쁨, 그 곳에도 태극기가!
일본이 항복 방송을 한 이튿날, 수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만든 태극기를 장대에 매달고 “조선 독립 만세”, “축 해방” 이라고 쓴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마음껏 휘날리는 것이야 말로, 광복의 기쁨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 광복군 서명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9호), 1945년, 독립기념관 소장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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