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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을 펴낸 언론인, 서재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을 펴낸 언론인, 서재필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혹은 장지연의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린 <황성신문>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은 바로 <독립신문>입니다!

그렇다면 <독립신문>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이름, 서재필입니다.

서재필은 ‘3일 천하로 알려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구성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을 갔고, 그 곳에서 필립제이슨(Phillip Jaisohn)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서재필의 의료기구(출처: 독립기념관)

 

서재필은 1895 12월 조선으로 귀국하지만 신문만 펴내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당시 신문이란 한성순보, 한성주보와 같이 관보적, 즉 정부적 성격이 강했고, 신문에 쓰인 글 또한 한문이라서 일반 국민들이 읽기 힘들었지요. 이에 서재필은 1896 4 7, 개혁관리들의 지원을 받으며 유길준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습니다.

 

   

독립신문(출처: 독립기념관)

 

독립신문은 4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 한글로 되어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이었습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창간 외에도 국민 계몽 운동과 우리나라 자주 독립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1896 6월 영은문의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영자 독립신문인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를 간행했으며, 잡지 「한국평론(Korea Review)」를 발행하여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언론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평론(Korea Review)(출처: 독립기념관)

 

서재필 선생은 조선의 이권을 노리는 열강의 강압에 못 이겨 1898년 미국으로 다시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접한 3.1운동 소식은 다시 서재필 선생의 조국의 독립을 위한 열망에 불을 지폈는데요, 필라델피아에 외교통신부를 설치하고 한국의 독립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 일제 침략의 만행을 알리는 등 열심히 언론과 선전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1945년 광복 후 서재필은 미군정청 최고정무관이 되어 조국으로 귀국하였고, 미군정이 끝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51 8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귀국한 서재필과 그의 딸 뮤리엘(출처: 독립기념관)

 

사실, 아직 서재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조국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사실은 변함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