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걸음기자단 History

삼촌(三寸)과 함께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삼촌(三寸)과 함께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걸음 기자단 2기 김유나, 손진슬, 이정민, 이기동입니다! 저희는 이번에 삼촌(三寸)’과 함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삼촌(三寸)은 서촌, 남촌, 북촌을 이르는 말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랍니다. 서촌은 역관들이 주로 거주했으며 외국인 공사관들이 많이 생겨 개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남촌은 조선의 선비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배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에 저항한 민족운동은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던 북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이제부터 너무나 변화무쌍했던 삼촌(三寸)과 함께 과거로 출발!

 


개항과 근대 문물의 중심지, 서촌


                     


 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으며 쇄국정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서촌은 예로부터 역관과 같은 중인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었어요. 역관들은 개항과 함께 떠오르는 새로운 인재였답니다. 외국 영사관들이 조선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통역이 필요했으니 말이죠. 이 때문인지 서촌에는 각 국의 영사관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 1883년 경의 미국 공사관(출처: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 현재 미국 대사관저(출처: 문화재청)

 


미국 공사관은 서울 서촌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공사관 건물인데 당시 강원도 관찰사의 한옥집을 구입해 우리나라 전통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공사관이 서촌(정동)에 처음 들어선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러시아 공사관을 비롯해 많은 외국 영사관들이 들어섰습니다. 현재 미 대사관저로 쓰이고 있으며, ‘하비브 하우스(Habib House)’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900년경에 내부가 개조되었으나. 1983년 당시 모습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편이랍니다.

 


일제 침략의 컨트롤타워, 남촌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로 많은 외국 세력들이 한국에 영사관을 세우며 속속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침략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 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탄압하기 시작했죠.

 


                  

() 조선신궁(출처: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 현재 안중근 기념관

 


남산은 예로부터 허생과 같은 조선의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으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답니다. 조선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었죠. 그런데 1925년 일제는 남산 일대에 일본 건국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모신 조선신궁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조선 사람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며 민족의 정기를 탄압했죠. 뿐만 아니라 통감부 관사,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도 이 곳에 자리해 있었답니다. 이처럼 일제 침략의 정신적, 정치적 기반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남산에 1970년 안중근 기념관이 건립되어 그 아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민족운동의 혼이 깃든 장소, 북촌


                          


조선시대부터 북촌은 한양의 중심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북악산 산줄기가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요. 때문에 예로부터 권문세가의 주거지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양반과 관료가 거주민의 약 50%라 하니, 양반의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 운동을 지휘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랍니다.

 


                 

() 탑골 공원(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 현재 탑골 공원

 


탑골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입니다. 1919 3·1운동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곳 탑골 공원에 모여 만세를 외쳤습니다.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는데, 지금도 팔각정의 모습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탑골공원 안에서는 3·1 부조와 함께 3.1운동을 이끌었던 33인의 민족대표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한용운의 시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광복을 위해 3.1운동이 일어났던 의미 있는 장소가 현재는 역사를 담은 도심 속의 공원으로 바뀌었답니다. 탑골 공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음에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동떨어진 공간처럼 보입니다.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들만이 이 곳의 역사를 지키는 수호자처럼 공원에 계신답니다. 과거의 의미를 되새기며 탑골공원을 둘러 보는 건 어떨까요?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