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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한 국어학자, 최현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한 국어학자, 최현배

 

“한 겨레의 문화 창조의 활동은, 그 말로써 들어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기나니: 이제 조선말은, 줄잡아도 반만년 동안 역사의 흐름에서, 조선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 그 성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지은 문법책 우리말본』 의 머리말 중

 

한글 사랑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세종대왕이나 주시경 선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한글을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외솔 최현배 선생으로, 선생은 국어학의 연구와 국어정책의 수립에 전념하여 이와 관련된 수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선생은 우리의 말과 글 연구에 평생을 바쳐 우리 언어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 (출처: 문화재청)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에 힘쓴 최현배 선생은 1910년 보성학교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국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습니. 최현배 선생은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주시경 선생의 민족주의적 언어관에 영향을 받아 국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10, 최현배 선생이 국어 연구의 길로 들어섰을 때,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나 우리말은 더 이상 국어가 아닌 조선어가 되었습니. 최현배 선생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말 연구와 가르침에 더욱 힘을 쓰게 되었습니. 선생은 학교에 교원으로 부임하여 국어를 가르치고, 국어의 문법 체계를 세울 목적으로 통일된 표기법과 정립된 표준말을 제시하는 우리말본』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으며, 또한 한글날제정에 힘쓰기도 하였습니다.

 

최현배 선생은 특히 1921년에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인 조선어학회에서 국어 연구에 관한 큰 활약을 하였습니다.

 

 

조선어학회 단체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최현배 선생이 광복 이전에 해왔던 꾸준한 우리말 연구 활동은 광복 이후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해방 직후 가장 시급한 과제인 국어 교재 편찬과 교사 양성에 힘을 썼습니. 오랫동안 국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 사용만 강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 또한 최현배 선생은 어려운 한자 대신에 한글을 쓰도록 하고, 효율적인 독서를 위해 세로쓰기 대신 가로쓰기를 쓰도록 독려하였습니. 우리말과 글을 바로 세우기 위한 선생의 노력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을 편찬하는데 까지 이어졌습니.

 

1970년 외솔 최현배 선생의 사상을 기리는 모임인 외솔회가 창립되어 기관지 《나라사랑》을 발간하며, 해마다 국학연구와 국어 운동에 뛰어난 사람에게 외솔 상을 시상함으로 선생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최현배 선생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연구에 있어서 두드러진 업적을 쌓았으며, 광복 이후 파란 많던 정치의 소용돌이에서도 나라사랑의 충정으로 꿋꿋하게 살아간 겨레의 스승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