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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덕혜옹주의 삶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나라에 미친 비극적인 영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1912 5 25일 덕혜옹주는 조선시대 제26대 왕인 고종과 궁녀인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덕혜옹주가 태어난 해는 고종의 회갑 해인 1912년이었는데요, 고종에게는 4명의 딸이 있었지만, 모두 다 돌이 되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덕혜옹주는 고종의 고명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자신을 쏙 빼 닮은 아이를 위해 고종은 준명당에 유치원까지 만들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고 합니다.

 

 

 

준명당 모습

  

원래 궁궐 건물은 기단이 높은데요, 고종은 덕혜옹주가 부주의로 다칠까봐 준명당 기단에 별도의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윗 사진에 동그란 구멍이 있는데 그것이 원래 난간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고종 생전 모습과 장례 치르는 모습

 

 

덕수궁 함녕전 현재 모습

고종은 덕혜옹주를 곁에 두고 싶어 자신이 기거하는 함녕전에서 같이 생활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서거 이후 1925 3일본총독부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린 덕혜옹주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의 수도, 도쿄로 보내졌습니다. 덕혜옹주는 아오야마에 있는 여자학습원을 다녔는데, 항상 말이 없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1931 5, 덕혜옹주는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덕혜옹주가결혼 전 얻은 조발성 치매증이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결혼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1955년 이혼하기에 이릅니다.

 

덕혜옹주는 한국으로의 귀국을 평생 동안 희망했지만 순탄치 않았습니다.

1962,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지만 덕혜옹주는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 4월 그녀의 나이 77세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합니다.

 

 

 

현재 창덕궁 수강재 모습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하여 창덕군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다 사망하였다.

 

개인적으로 덕혜옹주의 정신질환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 강제로 일본으로 보내져 정략결혼을 하게 되고 가족인 순종의 국장에 참석하지도 못하는 등 여러 면에서 기본 자유를 박탈 당해서 생긴 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로 암울한 영향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조국에 돌아온 후에도 조국을 그리워한 여인 덕혜옹주,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그녀의 삶이 뮤지컬 덕혜옹주로 제작되고, 그녀의 삶을 토대로 한 드라마도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그녀의 이름과 안타까운 생애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