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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간송 미술관 설립

간송 미술관 설립

 

광복 이전의 중요한 사건을 뽑으라고 하면 1938년 간송 전형필의 보화각(현재의 간송미술관) 설립을 뽑고 싶습니다. 보화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입니다. 여기서 개인 박물관 설립이 우리나라 역사에 큰 역할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간송 전형필 초상화 (출처: 간송미술관 홈페이지)

 

먼저, 전형필 개인과 그의 박물관을 소개하기 전에, 과거 우리나라 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외국으로 밀반출되었고, 현재 환수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 중반에는 6.25전쟁이라는 수난기를 연거푸 겪으면서 우리나라 문화재가 외국으로 많이 약탈 및 밀반출되었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2015 4월 기준, 외국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16만 점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 중 우리나라 문화재 중 67천 여 점이 일본에 있고, 미국에는 4 4천 여 점이 있습니다. 이는 각각 국외소재 한국문화재의 42%, 28%에 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우리나라의 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환수 과정이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외규장각의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 내용을 기록한 책들) 를 돌려받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알아보면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반환 협상과 요청을 계속하여 결국 2011 2월에야 의궤를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반환이 아닌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임대형식의 대여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1725)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온라인 서비스)

 

한번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경우도 1801년 영국으로 반출된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고국으로 환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화재 반환 논란의 중심인 이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은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출처: 대영박물관 홈페이지)

 

이와 같은 문화재 환수의 어려움을 감안했을 때 저는 간송 전형필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전형필은 부호가의 상속권자였습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문화재를 수집∙구입 함으로써 우리나라 중요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일부분 막았습니다. 그리고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는데, 그것이 현재 간송미술관인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한 간송 전형필의 진심이 만든 간송미술관. 전형필의 애국심과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간송미술관입니다.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