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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자유를 향해 비행한 안창남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상공을 최초로 비행한 비행사가 누군지 알고 있나요?

지금부터 많은 분들이 생소할 있는 안창남에 대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안창남

 

안창남은 일제강점기인 1901 3 19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학교마저 퇴학하게 되었습니다. 1916 용산 연병장에서 벌어진 아트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안창남은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도쿄로 아카바네 비행기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조법을 배웠으며 오쿠리 비행 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우게 됩니다.

1921 5 일본최초로 치워진 비행사 자격시험에 참가하여 17 응시자중 안창남이 유일한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2명의 합격자 그가 수석으로 합격하였습니다.

그는 국내에 비행학교를 건설하여 항공독립부대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당시에 안창남의 꿈은 시련을 겪게 되고 1930 비행 갑작스러운 추락사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개벽지에 담은 염원

 

그는 식민지가 우리나라의 하늘을 날면서 내려다본 감정을 개벽지에 보여주었습니다.

 

경성의 하늘! 경성의 하늘!

내가 어떻게 몹시 그리워했는지 모르는 경성의 하늘!

하늘에 몸을 날릴 몸은 그저 심한 감격에 떨릴 뿐이었습니다.

경성이 아무리 작은 시가라 합시다. 아무리 보잘 없는 도시라 합시다.

러나 고국의 서울이 아닙니까. 우리의 도시가 아닙니까.

장차 크게 넓게 있는 우리의 도시

그리할 사람이 움직이고 자라고 있는 경성 하늘에 비행기가 나르기는 결코 1,2차가 아니었을 것이나 

비행은 우리에게 대한 어떤 의미로의 모욕, 아니면 어떤 자는 일종 위협의 의미까지를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 잘하나 못하나 우리끼리가 기뻐하고 우리끼리가 반가워하는 중에 우리끼리의 몸으로 내가 날을 있게 것을 나는 더할 없이 유쾌히 생각하였습니다.

(안창남, 空中에서 京城과 仁川 개벽 1923 1월호)

 

개벽지에는 위에 기사 외에도 안창남의 심정을 있는 여러 개의 기사들이 많이 실렸는데 대부분 조국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소망을 나타낸 것들이었습니다.

 



안창남은 후일까지 직계후손이 없고 독립운동의 구체적 공적을 증명할 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1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애국장을 서훈 받게 됩니다.

 

그는 자유를 찾은 우리나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독립한 조국의 자유로운 하늘을 날았던 사나이였습니다.

 

출처: 한국역사연구회, http://projei.tistory.com/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