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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의 삶과 교육을 느끼다!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의 삶과 교육을 느끼다!

 

“애처로운 우리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이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님을 아시나요?

 

최용신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안산의 샘골마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입니다. 최용신 선생님의 이야기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채영신’으로 그려져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용신 기념관

 

최용신 선생님은 193110월부터 그녀가 순국하던 19351월까지 안산 샘골마을의 강습소에 YWCA 농촌지도사로 삶을 보냈습니다. 22살의 나이에 작은 예배당에서 한글·산수·제봉 등의 강습활동을 시작한 최용신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과 열정으로 현지 주민들의 이해를 얻어 내며 농촌마을 전반의 계몽을 위해 힘썼는데요, 이곳에서 아동들의 교육, 야학을 통한 문맹타파, 부인회, 청년회 지도 등의 강습활동을 하며 농촌운동가로써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최용신 선생님의 헌신적인 가르침은 샘골마을 농촌사람들의 변화와 지지를 이끌어 내게 하였습니다. 최용신 선생님으로 인해 자식들이 다른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샘골학습소 건립에 힘을 보태게 됩니다. 이 때 샘골학습소의 아이들은 60명에서 110명으로 대폭 증가 했지요.

 

최용신 선생님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강습활동에 임했던 이유는 문맹퇴치와 더불어 민족정신을 가르치려는 정신이 밑바탕에 있었습니다. 1930년대의 경기도 안산은 서울의 인접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봉건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이곳처럼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농촌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 농촌계몽운동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최용신 선생님은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로서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일제강점기 민족수난에 맞서 오로지 나라의 광복과 농촌계몽을 위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스승이었고 주민들에게는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던 최용신 선생님. 26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헌신적인 삶과 사상은 우리에게 귀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용신 기념관에 방문하면 선생님의 삶과 교육사상을 해설사의 설명으로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안산의 상록공원 내에 있는 ‘최용신 기념관’을 방문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