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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나의 이야기

6.25전쟁 66주년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


6월도 거의 끝나가지만 끝나지 않아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바로 호국보훈의 달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인데요!

없이 많은 국군과 UN참전용사의 희생이 있었던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 바로 6·25전쟁 66주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6·25전쟁의 발단과 과정을 블로그지기와 함께 알아볼까요?

 

1950 6 25 새벽 4 북한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우리 군은 속수무책으로 전쟁 발발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반도의 전쟁 소식을 듣게 미국은 25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고, 유엔은 미국이 제출한 북한의 침략 중지 38 이북으로의 철수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북한은 결의안을 무시한 무차별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이에 미국과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전투부대 파병을,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국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의 번째 선두부대가 한국군과 연합하여 공격했지만 전력의 열세로 인해 북한군은 낙동강선 까지 내려오게 되었고, 수많은 청년학도와 재일학도의용군의 합세하여 낙동강을 방어할 있었습니다.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펼치며 발발 97 만에 수도를 탈환할 있었으며 10 19 평양을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세는 다시 뒤집어졌습니다.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은 38선을 돌파하며 다시 서울을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며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6.25 전쟁. 전쟁 발발 3 1개월 만인 1953 7 27, 유엔군과 북한, 중공군이 휴전협정에 서명을 하면서 6·25전쟁은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정전협정서(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년이 넘는 전쟁으로 우리의 국토는 폐허로 변해버렸고, 수많은 국군과 참전용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크나큰 희생을 해야 했던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 다가오는 6 25 그날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이 통일로 한걸음 나아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