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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독립운동가들 혼이 살아있는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1908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1912년서대문감옥, 1923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을 바꾼 1945 해방이 때까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해방 전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이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후서울형무소서울구치소로 사용하다가1998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여 관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관람 동선에 따라 전시관부터 중앙사, 12옥사와 11옥사, 사형장과 붉은벽돌 그리고 여옥사까지당시 서대문형무소의 모습을 느낄 있습니다.





관람관에 따라 그에 맞는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는데요. 이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생각할 있도록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많은 외세의 침략을 맞았습니다. 외세의 침탈로 국권이 위태로웠던 조선의 말기엔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일제의 침략군에 맞서기도 했지요.

 

정식 훈련을 받지못했던 의병, 그들의 저항. 효과는 미미했지만, 이는 독립군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모습


나중에는 수감할 있는 공간이 없어 새로 건물을 증축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던 애국지사는 공식 기록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기록되지 않은 이들까지 더하면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또한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3.1독립 운동 이후 애국지사들은 자주독립을 위해 다양한 단체를 조직했습니다조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항일투쟁을 계속하게 됐지요임시정부나 비밀결사사회주의운동 조선어학회 등의 운동 또한 이곳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볼 있습니다.

 





광복단, 의열단, 27결사대 그리고조선민족대동단의 설명도 있네요.





천정은 당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줍니다. 목조 건물로 되어 있는 틀이 보입니다.




수형기록표와 함께 그들을 추모하는 추모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벽에 가득히 붙어있는 그들의 수험기록표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들의 희생으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도 많습니다. 사형장에서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가는 400 .

공식 기록은 165건만 남아있습니다.





수감된 독립운동가는 어디서 어떤 고문을 당했을까? 지하고문실을 통해 일제의 잔인한 고문을 확인할 있습니다.

고문실과 취조실, 벽관 등을 통해 모습을 추측할 있어요.






여성 독립운동가를 수감했던 여옥사. 유관순 또한 이곳에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잊고 싶지 않을 비극적인 장소, 서대문형무소. 일제의 만행을 기억해야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