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청계천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가보셨다면 청계천을 따라 있는 큰 시장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그곳
은 바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형성된 의류전문 도매상가인 평화시장입니다.
평화시장(출처 : 두산백과)
평화시장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한에서 내려온 많은 피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청계천 인근의 판자촌에 모여 살며 재봉틀 한 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팔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청계천 주변에서 의류를 만들고 판매하는 노점상인들 중 약 60%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지요. 평화시장의 ‘평화’라는 이름 역시 그들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후 평화시장은 꾸준히 그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습니다. 1962년에는 지금의 모습과 비슷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판자촌에서 공급되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내 수공업 형식의 영세상업들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실상은 ‘평화’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며 평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입니다.
전태일열사영정(80년대 사용)(출처 : 전태일재단)
전태일은 아버지가 빚을 얻어 집안이 어려워지자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생업에 뛰어들어 1965년 17살에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이듬해쯤에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서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이때 그가 발견한 것은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습니다. 당시 영세한 상인들의 의류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하여 있던 평화시장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햇빛도 없는 좁은 곳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만 의존해 하루 14시간의 고된 노동을 했고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느라 폐질환에 걸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여성들이었고 ‘시다’라고 불리는 어린 소녀들은 오랜시간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수당도 받지 못했습니다. 전태일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냈고 자신은 좋은 대우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68년에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게 되어 이듬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기준법에 대해 많은 노동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이 일로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쫓겨나 막노동현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은 1970년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회’를 조직하고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힘썼습니다. 많은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태일은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70년 11월 3일에 그는 삼동회 회원들과 함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현실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방해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이에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부어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후 병원에 실려갔으나 그는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노동자들 스스로도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대문 청계천 전태일 열사 동상(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청계천의 버들다리에는 ‘전태일다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청계천과 평화시장에 들를 때 이곳에도 들러 그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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