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한국 최초의 한류스타 코리언 댄서 최승희

한국 최초의 한류스타

코리언 댄서 최승희

 

춤, 노래, 뮤지컬, 연극 등 공연소식이 풍성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마당극, 탈춤 같은 공연문화를 즐겼는데요, 11월 24일(1911년)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전통춤을 세계에 널린 한국 최초의 현대 무용가 최승희가 태어난 날입니다. 오늘은 민족의 ‘흥’과 ‘한’을 개성 있는 연출과 매력적인 춤으로 무대에서 한껏 뽐낸 최승희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코리언 댄서’


1911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최승희는 오빠 최승일을 따라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일본 현대무용가 이시이바쿠의 무용발표회를 구경한 것을 계기로 무용계에 입문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위해 이시이 바쿠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간 최승희는 타고난 체격과 끼로 빠르게 현대무용을 익혔습니다. 3년 만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열고 여러차례의 신작 발표회를 가졌는데요, 문학청년 안막과 결혼 후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코리언 댄서’ 최승희로 뜨거운 호응을 얻습니다.


▲1942년 최승희의 중국 무용공연 팸플릿(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이어서 뉴욕과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는 가는 곳마다 큰 성공을 거둡니다. 프랑스에서는 ‘동양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며 극찬할 정도였지요. 또 공연 때 쓴 초립동 모자는 한동안 멋쟁이 파리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할 정도였고, 남미의 페루와 멕시코까지 최승희는 지구촌 곳곳에 조선과 조선 춤을 알린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스타였습니다.

 

민족의 감성을 아름다운 예술세계로 이끌다

 

최승희는 현대 무용에 조선의 민족 무용을 융합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했습니다. 술에 취해 어깨춤을 추는 아버지를 보고 만든 <에헤야 노아라>, 무당이 추는 춤을 보고 만든 <무녀춤> 뿐만 아니라 <승무>, <쌍검무>, <초립동춤> 등 인기를 끈 춤은 하나같이 조선의 전통춤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지요. 특히 파리공연에서 큰 사랑을 받은 <보살춤>은 그녀의 대표적인 춤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그녀의 무용 세계에서 또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 불상의 아름다움을 무용으로 승화한 <보살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북한으로 간 비운의 무용가

 

최승희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끌었던 화려한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일제 강점기의 그늘을 피하지 못했는데요, 태평양 전쟁 이후 그녀는 일본군대를 위해 위문공연을 다녀야 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해방 이후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 북한에서 제자를 지도하는 모습 (출처: 연낙재)

 

“예술로 친일을 했다면, 예술로 속죄를 하겠다!”

결국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남편 안막을 따라 북한으로 가게 됩니다. 그녀는 북한에서도 춤을 추면서 후학 양성과 조선의 전통무용을 이론화 한 「조선민족무용기본」을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1960년대 후반 숙청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민족과 전통을 잊지 않고 코리언 댄서임을 당당히 드러냈던 최승희. 어두운 일제강점기에 우리 춤의 빛을 밝혀준 그녀를 다시금 기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