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의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인가요?

 

대부분 프랑스의 슈바이처를 떠올리실 텐데요. 오늘은 슈바이처만큼이나 사랑과 헌신으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 김점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김점동의 롤모델이었던 로제타 셔우드 홀 / 출처: 국립광주과학관 블로그>

 


운명적 만남

김점동은 1876년에 태어나 10세에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학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줍니다. 특히, 영어에 뛰어났는데,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여자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의 통역 일을 하게 됩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이화학당에 개설된 여성들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처음에 김점동은 의료에는 관심이 없고 통역에만 충실했지만, 로제타 셔우드 홀이 수술로 사람을 치료하며 환자가 낫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의사가 되다

그녀는 17세에 로제타 셔우드 홀이 소개해준 박유산과 결혼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제타 셔우드 홀을 따라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납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도움으로 그녀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볼티모어의 여자 의과 대학에 최연소로 입학하게 됩니다. 김점동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 박유산이 그녀의 졸업을 2달 앞두고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졸업하던 날 함께 하지 못하는 남편의 무덤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김점동 / 출처: 국립광주과학관 블로그>

 


헌신적 삶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보구여관일을 시작합니다. 10개월간 약 3,000명의 환자를 돌보았고, 얼마 후 로제타 셔우드 홀이 한국으로 돌아와 세운 홀 기념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김점동은 자신이 환자를 찾아다니며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했고, 무당과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홀대받으면서도 열심히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떠나보내게 했던 병인 폐결핵에 걸려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남자들도 꺼렸던 유학길에 올라 서양 의학을 배우고,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을 살신성인으로 치료하고 생각했던 그녀의 삶은 ‘최초’보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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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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