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밥이 주식인 대한민국의 연간 쌀 소비량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흰쌀밥은커녕 보리밥조차 구경하기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요. 우리는 이때를 일컬어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 우유 배급받는 아이들 / 출처 : 정범태(1928~) 사진작가 >
보리 이삭이 필 무렵은 가을에 거두어들였던 식량이 거의 떨어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묵은 곡식은 동이 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이때가 바로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였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배고프고 힘든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는데요. 이때 농민들을 춘궁민 또는 춘곤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1952년 경북 한 곳을 갔더니 동리 사람의 대부분이 쑥도 먹지 못하고 굶어 몸은 터지게 붓고, 심지어 흰 흙을 여러 가지 풀잎과 같이 씹고 있다. 솥에 낟알 곡식이 들어가지 못한 지가 40일이다 혹은 60일이다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을 근력도 없어 자살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신중목, 『전환기에 선 농촌문제』, 국민교양협회, 1954, 68쪽)
윗글은 1954년 국민교양 협회 신중목이라는 사람이 실은 [전환기에 선 농촌문제]라는 글의 한 대목인데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보릿고개 당시 농촌의 모습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겨울바람이 이어지는 3월부터 보리를 거두는 6월까지, 우리 위 세대들은 어떻게 보릿고개를 이겨 왔을까요?
밥으로 배를 채울 수 없었던 시절.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과 같은 구황작물은 그나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실 포실한 감자와 뜨거운 고구마 위에 시원한 김치를 척 얹어 한 입 베어 물 때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요. 지금은 주로 식사 대용이나 간식,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음식이지만, 보릿고개를 걸어가던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한 끼 식사가 되어주었습니다.
< 밥을 먹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배고픈 농민들은 먹거리를 찾아온 산과 들을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는 쑥, 냉이 같은 봄나물과 칡뿌리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광주리에 담아 산을 내려왔는데요. 그렇게 캐온 쑥이나 냉이를 넣고 보리 몇 알을 넣어 묽은 나물죽을 끓여 먹거나 칡뿌리는 가루를 내어 떡국처럼 먹었다고 하네요.
< 보리개떡 / 출처 : 오마이뉴스 >
보리 겨를 빻아 소금, 설탕, 물을 넣고 반죽해 쪄 먹은 보리개떡과 소나무의 껍질을 삶아 우려낸 뒤 수수, 조, 메밀 등을 넣어 만든 송기죽도 농민들의 한 끼 식사가 되어주었습니다.
< 꿀꿀이죽을 먹는 노인 / 출처 : KBS 한국인의 밥상, 가장 슬픈 한 끼 - 전쟁과 밥상 >
농촌에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허기를 채우는 동안 도시에서는 ‘꿀꿀이죽’이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웠습니다. 꿀꿀이죽은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다시 끓여낸 탕, 일명 UN 탕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 주화였던 10환을 내면 이 잡탕 죽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운이 좋으면 큼직한 고깃덩어리도 얻어걸리지만, 때로는 담배꽁초들이 마구 기어 나오기도 했다고 하네요.
1970년대부터 보릿고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요. 경제개발 5개년에 이어 새마을운동 붐이 일어나면서 너도나도 쌀 증산을 이루고 농촌에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식탁 위에서 쌀밥이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해마다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보릿고개. 저마다의 지혜와 강인한 힘으로 배고픈 시절을 잘 이겨내 왔는데요.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치는 현시대에 살고 있지만,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었던 당시 우리들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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