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위대한 후원자, 간송 전형필
간송이 지켜낸 가장 위대한 우리 문화유산 훈민정음 해례본
세계의 문자 중에 누가, 언제, 어떤 원리로, 왜 만들었는지 알려진 문자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입니다. 그렇다면 한글의 창제 원리와 목적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바로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헌신했던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로부터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例儀)’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해례(解例)’가 모두 실려 있는,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정본이랍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출처: 간송문화재단)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되찾다
이렇듯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많은 골동품과 고서화가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거간꾼사고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과 수장가를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막대한 부를 물려받았음에도 개인 재산으로 축적하지 않고, ‘한남서림’이라는 고서점을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습니다. 이곳에는 항상 전국에 있는 수많은 거간들이 서화와 골동품을 들고 찾아왔는데요, 그 이유는 제 가격을 주고 구입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랍니다. 전형필 선생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인들에게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가보다 훨씬 큰돈을 지불하기도 했고,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이미 일본에 건너간 문화재를 되찾아 오기도 했답니다. 전형필 선생님이 계셨기에 자칫 외국으로 반출될 수 있었던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현재 한국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 재학시절 방학 중 전형필(1928)과 보화각 개관 기념일에 북단장 사랑(1938)
(출처: 간송문화재단)
조선의 보배를 두는 집,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수집한 문화재를 지키고 연구하기 위해 ‘나라의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보화각’을 설립했데, 이것이 지금의 간송미술관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성북동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윤복, 김정희, 정선, 심사정, 김홍도, 장승업 등의 수많은 회화작품과 서예작품, 자기류, 불상, 석불, 서적 등에 이르기까지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간송미술관 소장품은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동국정운(국보 제71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국보 제149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제65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 외 국보급 문화재와 금보(보물 제283호), 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보물 제286호), 백자박산향로(보물 제238호),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보물 348호) 외 보물급 문화재가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급 문화재 일부: 좌로부터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국보 제135호)
(출처: 간송문화재단)
우리 문화유산이 지켜지고, 이어가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산물인 문화재를 지키고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아 민족의 자긍심을 살려준 간송 전형필선생. 전형필 선생은 광복 이후에도 일본을 오가며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오는데 힘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6.25전쟁의 피난길에서도 문화재를 가슴에 품고 잠을 청할 만큼,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는 사명감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포함한 진귀한 문화재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개인의 부를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을 위해 아끼지 않았던 한국 최고의 문화후원자이자, 그의 집념과 희생이 있었기에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이 지켜졌고, 이것이 다시 찬란한 문화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송 전형필 동상(출처:간송문화재단)
본 글은 한걸음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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