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인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 갈 준비, 혹은 오랜만에 가족들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 이실 텐데요. 과거에도 설날은 우리 민족이 손꼽아 기다리던 날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상들의 새해맞이 풍경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조상들의 풍습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시풍속-세배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
새해의 아침이 밝으면 ‘복조리’를 벽에 걸어 놓아 한해의 복을 빌었습니다. 원래 조리는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쌀을 뜨는 도구인데요. 새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조리를 바로 ‘복조리’라고 합니다. 쌀을 뜨는 도구인 만큼, 복이 쌀처럼 불어나라는 의미로 장수와 재물을 바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12월 말이 되면 복조리를 파는 장사꾼들이 골목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는데요. 특히, 복조리 가격은 흥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 복을 흥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호랑이 그림 세화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복조리 말고도 한 해 복을 기원하는 것은 또 있었는데요~ 대문에 그림을 붙이는 ‘세화’라는 것입니다. 세화는 당시 중국에서 먼저 유행하던 문화였는데요. ‘악귀를 쫓기 위한’ 용도로 대문 그려 붙이던 관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 시작된 풍습으로, 처음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점차 서민들에게도 퍼졌다고 합니다.
본래 세화는 호랑이 그림이 많았지만, 서민들에게 전파된 이후로는 믿어오던 닭과 호랑이,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이기도 하였는데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형된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나무꾼의 윷놀이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복을 기원하는 풍습에 대한 방법은 세화나 복조리 이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새해 운수를 알아보는 방법인데요. 특히, 온 가족이 모여 윷으로 그해의 길흉을 알아보는 점은 매우 인기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놀이로만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윷의 점수에 따라 개인이나 지역의 운수를 점쳤다고 하는데요. 이 외에도 정월 밤에 액을 막기 위한 ‘다리 밟기’,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에게 고사를 올리는 ‘지신밟기’ 등 한해의 기운과 액을 막아주는 다양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왔습니다. 하지만 새해를 기원하는 풍습의 형태는 달라도 ‘행복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작년이었다면, 올 한해는 새로운 마음가짐과 함께 진정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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