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대한제국 멸망 이후부터 1945년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 강점(强占)하에 국 내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를 불렀습니다.
국내에서 공개적인 항일 운동이 어려웠던 시절, 해방의 염원을 간직한 이들은 나라 밖으로 모여 일본의 칼과 총에 맞서는 무력 투쟁의 깃발을 들었는데요. 이들은 우리에게 제 몸 바쳐 무력으로 일본에 저항한 의인이라는 뜻의 ‘의사’ (義士)로 기억됩니다.
<종로에서의 만세시위 / 출처 : 광주일보 2015년 8월 5일 자>
한 편 칼과 총 대신 펜과 종이로 혹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우리는 이런 분들을 열사(烈士)로 기억하고 있죠.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국권 회복과 독립을 소망했던 국민의 마음은 칼과 총, 펜과 종이 할 것 없이 하나로 이어졌을 터.
이러한 항일 운동이 음악으로도 이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일제에 항거하는 의미로 운율과 가락을 직접 만들어 불렀던 항일 음악이 그것입니다. 음악 항일 음악 작사가들 가운데 잘 알려진 인물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 학도가로 유명한 김인식, 독립운동가 이범석. 항일 노랫가락을 직접 쓴 작곡가들로는 이성식, 이상준, 이두산 등이 꼽힙니다.
<안중근 의사 / 출처 : 위키백과>
1900년대 대표적인 항일 음악으로는 ‘거국행’ ‘격검가’ ‘무궁화가’ 등이 있고 1910년 불린 항일 음악으로는 ‘옥중가’ ‘국민’ ‘독립가’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옥중가’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옥중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울분을 달랬다고 합니다.
“만주 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
1920년대 노래로는 ‘단심가’ ‘용진가’ ‘3.1소년가’ 등이 불렸고 1930년대 곡으로는 ‘민족해방가’ ‘자유의 기’ 등이 꼽힙니다. 만주 대한 독립군의 대표적 군가였던 ‘용진가’ 가사를 살짝 살펴볼까요?
<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 출처 : 국가보훈처 >
“나가세 전쟁장(戰爭場)으로 나가세 전쟁장(戰爭場)으로
검수 도산(劍水刀山) 무릅쓰고 나아갈 때에
독립군(獨立軍)아 용감력(勇敢力)을 더욱 분발(奮發)해
삼천만 번(三千萬番) 죽더라도 나아갑시다.“
나라를 잃어버린 애환과 국권 회복에 대한 희망, 애국정신이 녹아있는 항일 음악! 앞으로도 오랫동안 보존하며 지켜나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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