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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기자단 History

대한민국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월드컵 응원할 때 특히 목이 터쳐라 외치는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탄생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1전시실 중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부분을 통해 ‘대한민국의 태동’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라는 문구로 시작 되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수탈에 대항해 일어난 3·1운동이 있었습니다. 3·1운동을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민족지도자들의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이 본격화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국 독립의 길은 험난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이후로 일본군의 인적, 물적 수탈은 극에 달했는데요, 징병, 징용, 정신대가 동원되었고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각종 물자를 수탈해 갔지요.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1전시실에 전시된 태극기



3·1운동은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태동하였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질서의 정립을 위해 1918년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월슨이 제창한 ‘14개 조의 평화 원칙’에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이란, 각 민족은 자기 민족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으로, 당시 우리나라와 같이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약소민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3·1운동을 계기로 본격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0년의 국권 피탈 후 단절되었던 민족사를 잇고 한국 독립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제를 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죠.



임시정부의 주요 독립 활동으로 김구 선생이 결성한 ‘한인애국단’과 ‘한국광복군’의 활약을 들 수 있습니다. 한인애국단원이었던 이봉창 의사의 일본 국왕 폭살 시도와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는 침체됐던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한민족에게 조국 독립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 영토 내 무장 독립운동을 중국 정부로부터 승인받음으로써 ‘한국광복군‘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한인애국단의 의열 활동을 김구가 약술하고 엄항섭이 정리해 간행한 책 <도왜실기>



중국의 지원을 받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으로 이전하면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41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한국광복군은 일제를 우리 땅에서 축출하기 위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군과 연합해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두 차례 원폭 투하로 일본이 1945년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복 이후에 찾아 온 분단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도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겠죠?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우리가 되도록 힘내겠습니다!



*본 글은 한걸음기자단의 의견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