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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사건

이것은 대한민국의 금메달이다!

1936, 일장기 말소 사건


1936825일자 동아일보에는 월계수 잎으로 가슴을 가린 침울한 표정의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기뻐야 할 그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 그리고 태극기가 있어야 할 선수복이 무늬 없이 비어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가리고 싶은 일장기

 

1936년 제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은 손기정이 금메달을, 남승룡이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룹니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달려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 치하에 놓여있어 우리나라 선수들이 일본 국적으로 출전했기 때문이지요. 올림픽에서 값진 메달을 땄지만 시상대에 올라간 두 선수는 조국을 대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침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손기정은 시상식에서 1위에게 주는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훗날 동메달리스트였던 남승룡은 손기정이 딴 금메달보다 1위에게 주는 월계수가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리고 싶은 그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손기정 선수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린 모습

(출처: 손기정 기념재단)

 

손기정이나 남승룡의 이 마음은 당시 일제 치하에 있던 모든 민족의 마음이었을 텐데요. 그 마음이 드러난 사건이 같은 해 825일에 있었던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입니다.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일부러 지운 채 보도한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조국을 드러내지 못한 민족의 답답함을 표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작된(?) 사진으로라도 국민을 위로하며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당시 언론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 동아일보가 처음은 아니다!

 

사실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처음 게재한 곳은 동아일보가 아니었습니다. 825일자 동아일보 기사 보다 먼저인 813, 조선중앙일보 유해봉 기자가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었는데요, 당시 신문의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일부러 지운 것인지, 인쇄가 잘못된 건지 구분할 수 없다고 판명이 나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통과 했습니다.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1936825일자(출처 : 국가기록원)

 

이 사실을 들은 동아일보의 이길용 기자가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의 사진을 신문에 개제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진이 크게 부각되어 일부러 지운 일장기가 발각되고 말았지요. 이 일로 기자들은 경찰에 체포되었고,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처분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언론인들이 일본에 대항한 또 다른 방법의 독립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