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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8.15 광복특집] 2. 두 번의 8월 15일

두 번의 815

 

‘815하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아마 가장 먼저 광복이 생각날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815일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3년간의 미군정 시기를 지나 완전한 독립국임을 선포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이 날 역시 815(1948)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던 1945815일 광복을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원폭 투하와 일본의 항복

 

미국이 194586일 일본 히로시마, 89일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 폭탄을 투하하고 88일에 소련군이 일본군에 선전포고를 하자 이에 열세에 몰린 일본이 815일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 직전 소련군의 참전으로 인해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흘러가면서 또 다시 우리나라는 국제 냉전체제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1945년 일본 항복과 대한민국 독립 _ 독립기념관 소장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땅에 그어지는 38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평양에 주둔하던 소련군도 김일성을 앞장 세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첨예한 이념대립 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나라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한 신경전을 벌였고, 군사적 분할 점령선(북위 38도선)을 그으며 남북이 갈라지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이념으로 인해 두 개로 갈라질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미국과 소련도 한반도에 자기들 편의 단일정부를 만들 생각이었으니까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38

 


·, ·우 대립과 5·10 총선거

 

소련은 자기들 편인 공산주의자 중심으로 구성된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북한을 간접적으로 통치했습니다. 미국은 직접적인 미군정을 실시했지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국과 소련, 좌익과 우익간의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서 단일정부를 만들기 위한 협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유엔이 개입하여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단일정부 수립안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소련의 거부로 좌절되고 남한에서만 단독으로 총선거가 치러지게 되지요.


   

                                                                          ▲() 5·10 총선거 (출처 : 국가기록원)

()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10 총선거는 남북이 함께 하는 선거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선거인 등록자 대비 투표율 95.5%가 보여주듯이 우리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편 이런 선거 결과는 우리 국민이 자유민주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 ·우 대립과 5·10 총선거

 

5·10 총선거로 구성된 초대 국회는 헌법 기초위원회를 구성해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하여 1948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합니다. 광복 후 정확히 3년 만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혹독한 일제 식민 치하에서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펼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열강의 이념 대립을 뚫고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 모두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아름다운 독립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