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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대한민국 현대사 50년을 담은 ‘고바우 영감’

대한민국 현대사 50년을 담은 

‘고바우 영감’

 

지하철에서 종종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는데요, 이렇게 인기가 많은 웹툰은 단행본이나 영화로 나와 큰 인기를 얻기도 하죠. 60년 전, 컴퓨터와 인터넷은 없었지만 요즘 웹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4컷 만화가 있었습니다. 만화로서는 처음으로 문화재로 등록된 ‘고바우 영감’입니다. 1950년 [사병만화]에 첫 선을 보인 이후, 1955년 2월 1일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등의 일간지에 연재가 되었는데요, 2000년 9월 29일 연재를 마칠 때까지 총 1만 4,139회나 이어진 한국 최장수 시사만화입니다.

 

고바우 영감을 탄생 시킨 김성환 화백은?

 

1932년 이북에서 태어난 김성환은 해방 후 서울 경북중학교(현 경복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미술에 남다른 재주를 가졌던 그는 [연합신문]에 4칸 만화를 그려 보냈는데요, 그것이 그의 만화 인생의 첫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랑]의 전속 만화가가 되어 생활이 어렵던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지요.


▲김성환 화백의 필기구(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러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피난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200여 명에 가까운 만화주인공을 습작했다고 합니다. ‘고바우’ 캐릭터도 바로 이 때 탄생했는데요, ‘친근한 이웃 같지만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성은 ‘높을 고’자를, 이름은 친근하고 편안한 ‘바우’로 붙였다고 합니다. 당시 과장된 얼굴 표정의 만화 캐릭터들이 주류인 가운데 특별한 표정없이 한 올 머리카락으로 심리표현을 하는 독특한 캐릭터가 탄생한 것입니다.

 

고바우 영감을 말하다

 

고바우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동아일보>에 연재되면서부터인데요, 초기에는 무언만화 형식의 유머에 집중했으나 점차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풍자와 날 선 비판이 주류를 이뤘지요. 어느새 고바우 영감은 우리 사회의 권력과 비민주적인 것에 맞서 싸우는 투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성환은 각종 필화 사건을 겪어야 했는데요, 수백 차례의 검열에 의한 삭제와 정정은 물론, 즉결 재판과 벌금형, 정보부 요원들의 취조 및 협박까지 당해야 했지요.

 

    

▲(좌)1987년 7월 1일에 실린 6·29선언을 다룬 <고바우영감> 

                                                   (우)2000년 발행된 고바우탄생 50주년 기념우표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바우 영감’의 인기 더욱 높아졌는데요, 단행본과 영화로 만들어지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고바우 영감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생겨날 정도로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는 고바우 5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고, 2001년에는 한국기네스북에 ‘최장수 연재만화’로 등재됐으며, 2013년에는 고바우영감 원화가 등록문화재 제53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고바우 영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신문에 연재되어 인기를 끌었던 4컷 만화 고바우 영감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는데요, 1960년대에는 ‘고바우 영감이/ 고개를 넘다가/ 고개를 다쳐서/ 고약을 발랐더니/ 고만 낳더래.’라는 고바우 노래를 아이들이 부르고 다녔을 정도였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 50년의 세월이 녹아있는 ‘고바우 영감’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소장자료 특별전 <고바우 영감-고바우가 바라 본 우리현대사>가 10월 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는데요, 이번 특별전에는 ‘고바우 영감’의 원화와 관련자료 200여 점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또 ‘고바우 영감님의 세상이야기’ 등 초등학교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을 통해 풍자적인 시각으로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자료 특별전 <고바우영감-고바우가 바라 본 우리현대사>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