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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물건 이야기

여권으로 본, 파독 간호사

여권으로 본, 파독 간호사

 

 

 

조금은 낡고 오래된 듯한 대한민국 여권입니다. 내부에는 증명사진이 붙어 있고, 인적사항을 비롯해 간호보조원(Aid Nurse)이라는 직업과 여행 목적 등이 적혀 있는 평범한 여권이지만 이 여권에 담긴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답니다. 

 

홀로 독일로 떠나다, 파독간호사 김양자씨  

이 여권 속 주인공은 파독 간호사으로 일한 김양자씨(1942년, 김천 출생)입니다. 김양자씨는 1965년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들 두었는데요, 윤택하지 못한 경제적 사정으로 파독 간호사를 지원하여 1973년 2월 홀로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김양자씨는 3년 계약으로 Schorndorf(쇼른도르프) 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며 언어문제로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지만, 주머니에 사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배우는 열성으로 독일인들에게 인정을 받아  RUIT(루이트) 병원으로 옮겨 4년을 더 근무했습니다. 귀국 후 독일생활이 이력이 되어 1988년 서울올림픽 시기에 동독 봉사팀에서 일하였고, 2002년 월드컵 때는 독일봉사팀으로 활동하기 했습니다.

김양자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베를린에 갈 일이 있어 동독에 들어섰는데, 여권을 검사하던 군인들이 도장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이라 여권에 동독 도장이 찍히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었는데요, 이것은 한국의 분단을 알고 있는 군인들이 친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간호사 파독은 언제일까?

영화 <국제시장>의 여주인공 영자를 통해 파독 간호사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파독 간호사의 역사는 1950년대 후반 서독 마인츠 대학(Universität Mainz) 소아과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이수길의 주선으로 시작되었는데요, 민간 교류 방식으로 전개되던 파독은 1966년부터 한국해외개발공사의 주관 하에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파독 간호사는 3년 근무에 매월 약 110달러의 보수의 조건으로 일했고, 이들이 송금한 외화는 1천만 마르크 이상으로, 한국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