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기는 History/물건 이야기

[4월의 소장자료] 김구 휘호「물위일념(勿爲一念)」

[4월의 소장자료]

김구 휘호 「물위일념(勿爲一念)

勿謂一念可欺也, 須知有天地鬼神之鑑察 물위일념가기야, 수지유천지귀신지감찰

勿謂一言可輕也, 須知有前後左右之竊聽 물위일언가경야, 수지유전후좌우지절청

勿謂一事可忽也, 須知有身家性命之關係 물위일사가홀야, 수지유신가성명지관계

勿謂一時可逞也, 須知有禍福子孫之報應 물위일시가령야, 수지유화복자손지보응

大韓民國31326日安重根義士殉國39週紀念74歲白凡갏九

 

한 생각이라도 속이지 말 것이니, 하늘과 땅과 귀신이 살펴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 한마디라도 가볍게 하지 말지니, 전후좌우에서 엿듣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일이라도 소홀이 하지 말지니, 내 몸과 집안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제멋대로 하지 말지니 자손의 화복에 응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949.3.26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 기념

 

1949 3 26, 안중근 의사 순국 39년을 기념하여 쓴 김구 선생의 휘호입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 이후 귀국하여 신탁통치 반대 운동,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남북협상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립지사들에 대한 처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윤봉길, 이봉창, 김경득의 유가족들과의 만남을 가졌으며, 이봉창(李奉昌)(19011932)·윤봉길(尹奉吉)

(19081932)·백정기(白貞基)(18961934) 삼의사의 유골을 봉환하고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의 허묘를 조성하

였습니다.

▲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역, 왼쪽 비석이 없는 봉분이 안중근 의사 허묘(출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백범회보26호)

 

김구 선생은 1948년과 1949년에 거쳐 많은 휘호를 남겼는데, 이 시기에 쓰인 휘호들은 남북 공동정부 수립의 실패

와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것이 많습니다. 1949년에 들어서서 6 26일 피살되기까지 김구 선생은

 50여 점의 휘호를 남겼는데, 특히 3·1절 및 안중근 의사 순국일(3.26)과 윤봉길 의사 의거(4.29)에 많은 글씨를 쓰셨

습니다.  

 

1949 3 26일에는 6편의 휘호를 남겼는데, 이 휘호도 그 중 하나로 우측부터 아래방향으로 써 내려갔으며,

좌측면에 '大韓民國三十一年 三月 二十六日 安重根 義士 殉國 三十九週紀念 七十四歲 白凡 金九

(대한민국31[1949] 3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 기념 74세 백범 김구)'라 적혀 있습니다.

 

김구 선생의 휘호 「물위일념(勿爲一念)」은

현재 진행중인 안중근 특별전 <울림, 안중근을 만나다> 3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