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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History/인물 이야기

한국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

"한국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


한국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임권택 감독이죠. 우리나라 영화는 임권택 감독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벌써 100편 이상의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누구나 첫 시작은 있는 법! 거장 임권택 감독에게도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답니다. 임권택 감독은 감독 데뷔 후 10년 동안 상업영화를 아주 많이 만들었다고 해요. 하지만 흥행을 하진 못했지요.



임권택 감독 (출처: 네이버 영화)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가치와 생각을 담고 작업을 한 것은 데뷔 후 10년이 지나서 였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영화를 쏟아내기 시작했지요.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라고 하네요.


임권택 감독 작품 중 정점은 아마 '서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전 작품으로 '장군의 아들'을 만들어서 크게 흥행에 성공하였는데, 그런 그가 다음 작품으로 판소리를 소재로 한 '서편제'를 만든 것이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판소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그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판소리가 우리 고유의 가락임은 분명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이 크던 시절, 판소리 영화에 대한 도전은 감독 인생에의 도전이기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서편제> 중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서편제는 1993년, 드디어 세상에 그 발을 내딛었습니다. 서편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판소리 영화, 하지만 사람들은 서편제를 통해 엄청난 반전을 경험했습니다.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 정서의 힘을 임권택 감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지요. 한국인의 판소리에 대한 인식은 서편제 전과 후로 나뉜나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결과 서편제는 서울에서는 단성사 한 곳에서만 개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3만 5천 명을 동원하며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선 최초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명성은 국내외에서도 자자했지만, 공식적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영화 '취화선'을 세상에 내놓은 후였습니다.



영화 <취화선> 포스터 (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2002년 5월에 열린 국제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칸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취화선'은 한국영화 사상 첫 번째 장편 경쟁부문 수상작이기도 했습니다. 작품성과 예술성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은 '취화선'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임권택 감독에게 명예황금곰상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영화 '씨받이'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긴 했었지만, 우리나라가 작품으로써 국제 영화제에서 이런 큰 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중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장승업은 서편제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한을 풀어내지요. 서편제와 취화선의 공통분모가 바로 '한국인의 정서' 그리고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서편제> 극장 간판 그림


1936년생인 임권택 감독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임권택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인 듯 합니다. 다작(多作)을 하면서도 품격 있는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해내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인을 향한 그의 무한한 애정, 그리고 그 애정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임권택 감독만의 영화가 앞으로도 더욱 오랫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랍니다.